레시피 월드
백승화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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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자고로 초능력이라고 하면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거나 엄청난 괴력을 지녔거나, 암튼 영화 속 히어로의 모습을 상상하잖아요. 근데 '방귀'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피식, 김빠졌다고 해야 할까요. 빼빼로를 먹고 방귀를 뀌어 높이 점프하는 초능력자라니! 이건 뭐,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자동차가 나왔다고 봐야죠. 솔직히 초반에는 살짝 실망했던 게 맞지만 점점 주인공 홍의 활약을 보면서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우습게 봤던 방귀의 위력, 그걸 올바르게 사용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멋져 보였거든요.

《레시피 월드》는 영화감독 백승화의 코믹판타지 액션활극 소설이에요. 앞서 언급한 주인공 홍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복숭아 맛 사탕을 먹고서 자신의 능력을 처음 알게 됐고, 엄마와 외할머니의 신신당부로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방귀 능력을 감추고 살다가 누군가를 구하느라 그 힘을 사용하면서, 세상에는 '펌핑걸', 트렌치코트에 쇼핑백을 머리에 뒤집어 쓴 미스터리한 존재로 알려지게 돼요. 이때 이상한 하와이안셔츠 무리들이 홍을 쫓으면서 상황은 급변하는데... 도대체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동안 홍도 몰랐던 비밀들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하찮게 여겼던 방귀가 새삼 놀라운 초능력으로 보이더라고요. 이 책에서는 <방귀 전사 볼빨간>, <깜박이는 쌍둥이 엄마>, <살아 있는 오이들의 밤>이라는 세 편의 이야기와 각각의 여담을 들려주는데, 개별적인 내용이라기엔 은밀한 연결고리가 있어서,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네요.

뿌웅!

내 방귀 소리였다. 너무 바쁘다 보니 내가 뀌었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주방 직원들이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앞으로 다가와 박수를 쳤다.

짝짝짝!

"드디어 깨달았구나. 방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115p)

방귀 능력 때문에 늘 하지 말란 소리만 들었던 홍이 변화하게 되는 결정적 장면이네요.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힘들고, 그게 하필 방귀라서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여겼는데 결국 방귀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걸 깨닫게 되다니 놀라운 성장의 순간이네요.

육아 스트레스로 지쳐 있는 쌍둥이 엄마의 깜박거림으로 벌어진 사고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조사국 조사원들의 이야기는, 문득 영화 <맨 인 블랙>이 생각나더라고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은 외계인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이런저런 상상이 재미있잖아요. 근데 쌍둥이 엄마의 일상을 보면서 가장 대단한 초능력자는 '엄마'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어쩌면 우리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초능력이 잠재되어 있지 않을까요. 레시피만 작동한다면 짠!

"자, 잘 들으세요. 레시피라는 건 말이에요. 그러니까 평범해 보이는 물건이나 행동, 상황, 감정, 경험 같은 것들이 어떤 조건에 놓이거나, 혹은 우연히 조합될 때 발생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다들 잘 모르셔서 그렇지, 이런 현상들이 주변에서 꽤 많이 일어나거든요. 예를 들어볼까요?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요. 1991년도에 만들어진 500원짜리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흰색 선만 밟으면서, '동 동 동대문을 열어라' 아시죠? 그 동요를 부르게 되면 초록불 길이가 3초 정도 짧아지거든요. 자, 이 모든 상황이 우연히 조합될 확률은 낮습니다만, 낮긴 해도 제로는 아니고 가끔 문제적인 레시피가 발생하기도 해요.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될까요? 아까 제 신분증 보여드렸죠? 레시피 조사국 조사원인 저희가 이렇게 현장에 찾아와서 해결을···" (204-2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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