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아포리아 14
롤랑 바르트 지음, 류재화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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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그가 누구인지 몰랐으나 그의 글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첫 장에는'이것은 다 소설적 인물이 말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라고 그의 필체로 적혀 있어요.

생전에 직접 쓴 자전적 에세이, 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소설적 인물의 말하기로 인식했을까요. 스스로를 소재 삼아 사유하고 기록한 내용이 바로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라는 책이에요. 이 책은 일반적인 자서전과는 달리 여러 단편들과 사진들이 퀼트 조각처럼 나열되어 있어요. 모든 조각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려면 매우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네요. 일단 무엇을 탐구하고 있는가, 자신에 대해 쓰고 있으나 자신만의 이야기는 아니며 언어 세계와 글쓰기라는 행위를 주목하고 있어요. 흥미롭게도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을 '그' 또는 '나'로 지칭하거나 이따금 R.B. 라는 이니셜로 부르고 있어요. 지금은 이니셜 사용이 흔한 데다가 자기애적 표현이라면, 바르트의 의도는 정반대라는 것,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태도에서 비롯된 표현이라는 거예요. 이전에 읽었던 바르트의 책이 생각났어요.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 상실감을 애도하기 위해 써내려간 일기를 읽으면서 그 마음을 오롯히 느낄 수 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읽고, 쓰는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네요. 네다섯 살로 보이는 바르트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사진 아래에 '사랑 요구.'라는 제목이 달려 있는데, '이미 네 안에 가득하다.'라고 바꿔주고 싶네요. 사진은 보여줄 뿐 아무말도 없지만 엄마와 뺨이 맞닿은 모습이나 꽈악 끌어안아 깍지 낀 엄마의 손에서 사랑이 느껴져요.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처럼 그의 결핍은 사실이 아니라 망각에서 비롯된 착각일지도 몰라요. 그가 기억하는 건 자신이 자주 그리고 많이 권태스러워했고, 이런 권태는 아주 일찍 시작되었고 평생 계속되었으며 항상 눈에 보였다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은 아마도 바르트의 권태를 그의 기질로 받아들였을 것 같아요. 우리는 이미지 말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자기 자신을 볼 수 없기에 글쓰기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나서는 거예요. 저자의 말처럼 이것은 글쓰기의 전체상을 보여주기 위해 쓰여졌고, 나의 텍스트를 통해 일종의 집단적 '그거'가 '내가 나에 대해 갖고 있다고 믿는 상'을 대체하는 구조주의적 모드를 제공하고 있어요. 상상적으로 자기 고유의 기호로 축소되고, 자기 스스로 승화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복잡한 주제가 아니라고 했지만 매우 복합적인 이야기라서 마냥 쉬운 내용은 아니었네요.

"여기에 가족 소설이 들어 있긴 하지만, 내 몸의 기원 이전, 그러니까 선사적 형상을 보게 될 것이다 - 이 작업, 즉 이 쾌락적 글쓰기는 이 몸에서 시작해 진행될 것이다. 이런 한정 또는 제약으로 이론적 의미도 생기기 때문이다. (전체상의) 이야기 시간은 주체의 젊은 시절에서 끝난다고 명시할 것이다. 따라서 이 전기에는 비생산적 삶만 있다. 내가 생산하는 순간부터, 내가 글을 쓰는 순간부터 나에게서 내 서술적 시간을 앗아가는 것은 (행복하게도) 바로 텍스트 그 자체이다. 텍스트는 사실상 아무것도 이야기해줄 수 없다. 텍스트는 그저 내 몸을 나라는 상상적 자아로부터 벗어나 머리, 저 다른 곳을, 일종의 기억 없는 언어 세계로 데려간다. 비록 내가 나의 글쓰는 방식 때문에 그런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해도 이 기억 없는 언어 세계는 이미 '민족'의 언어가, 주관성 없는 덩어리 집합의 언어 (또는 일반화, 보편화된 주제)가 되었지만. 여러 이미지들이 모인 전체상은 생산적 삶으로 들어가는 입구 바로 앞에서 멈출 것이다. (이 입구가 나에게는 결핵요양소에서 나오는 입구이기도 하다.) 그러고 나면 전혀 다른 전체상이 나올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의 전체상이다. 전체상이 펼쳐지지만 (이 책의 의도가 그것이니까), 시민으로서의 한 개인을 표상하기 위한 건 아니다. 그래서 그 상들이 채택되거나, 보장되거나,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형상화하려는 것도 아니고, 자유롭게 그저 알 듯 말 듯한 기호처럼 깜박일 것이다. 텍스트는 이미지 없이 이어질 것이다. 글을 쓰는 손의 이미지 정도면 모를까. " (18-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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