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 - 방랑작가 박인식의 부처의 길 순례
박인식 지음 / 생각정거장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학창시절에 선생님은 말씀하셨죠. "미쳐야 미친다!"라고, 그때는 미친 듯이 몰입해서 공부하라는 당부였지만 열정의 측면에서 '미친다'라는 것이 제게는 숙제처럼 느껴졌어요. 억지로 끌어낼 수 없는 마음이니까요. 끝까지 집중하여 마침내 이뤄내는 그 마음을 갖고 싶었어요. 근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켠에 바람이 불었네요.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는 방랑작가 박인식의 부처의 길 순례 기록이자, 15주년 스페셜 에디션이라고 하네요. 저자는 2010년 새해 첫날 부처가 태어난 네팔 룸비니로 가기 위해 카트만두로 날아갔다고 해요. 산친구 권경업 씨와 사진 작가 심병우 씨가 '부처의 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가 되어주었다고 하네요. 이 책은 네팔 룸비니에서 시작해 인도 쿠시나가르까지 백일 간의 여정이 담겨 있어요. 네팔 국립공안 안에는 다음의 표어가 적힌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고 해요. "네팔 히말라야를 바꾸기 위해 당신이 여기 온 게 아닙니다. 당신을 바꿔주기 위해 네팔 히말라야가 여기 있습니다." (19p) 애초의 '부처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는 건 고행길임을 알고 나선 거예요. 그러니 '왜?'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네요. 저자는 헤타우다 시가지의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해요. 노숙자와 다름없는 낯선 사내, 자글자글 주름진 육십 노인네가 가게 유리창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더래요. 그 쇼윈도 속의 연탄 얼굴이 내게 물었대요.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너는 누구이고,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그에게 답해줬대요. "부처가 태어난 데서부터 걸어온 사람이다. 하지만 아직 내가 누군지는 모른다. 그걸 알고 싶어 부처의 길을 따라 끝까지 걸어보려 한다." (112p)라고요. 순례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신앙적 성찰, 즉 순례자의 영적 탐구와 여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네요. 당연히 '나'라고 인식하는 '나'를 완전히 낯선 존재로 마주하게 만드는 여정,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살가운 존재들은 뜻밖의 깨달음을 주고 있네요.
"······ 역시 우연이다. 모든 것은 우연으로 일어나서 필연은 사라지게 된다. 만나는 것은 우연이고 지나가는 것은 필연이다." (288p)
저자는 부처의 길이 부처의 인연을 따르게끔 이어진다면서 바라마을 문수보살의 마지막 당부, "한국에 돌아가거든 단 한 번만 나를 생각해주시오!" (279p)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주네요. 숨바꼭질에서 술래가 되면 머리카락까지 꽁꽁 숨은 동무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한데 의외로 손쉬운 방법이 있다고, 그건 상대를 생각하는 거예요. 까닭 없이 그리워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면서 얼굴을 떠올리면 돼요. 부처는 바이샬리 차팔라 언덕에서 열반을 선언한 뒤 아난다를 데리고 북서쪽으로 마냥 걸어간 까닭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니딜푸르에 사는 아짐의 아내 덕분에 술래를 찾아가는 마지막 발길의 방향을 알게 되었고, 그곳은 부처의 고향인 네팔 카필라바스투가 있는 북쪽이었네요. 인도의 부성보다 네팔의 모성에 더 깊은 뿌리를 내린 곳, 부처는 어머니 품과 같은 고향의 품에 마지막으로 안기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하네요. 저자는 부처의 등 뒤를 따르며 백일 간 천오백 킬로미터의 방랑길을 걸었고, 그 길 끝에서 자신의 맨발 눈이 죽은 부처의 맨발을 보았노라고, 그 부처의 맨발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 제자리로 돌아온 거라고, 모든 것은 덧없이 변한다'는 마지막 법어를 남겼다고 하네요. 여행이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왔으나 떠나기 전과 이후의 삶은 달라졌으니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 아니며, 우리 역시 이 생애의 길을 걷고 있는 방랑자가 아닌가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