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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해지기 위해 씁니다 - 한 줄 필사로 단정해지는 마음
조미정 지음 / 해냄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하루 중 고요한 시간은 언제일까요.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때인 것 같아요.
일상 속 크고 작은 소음에 익숙해지다 보면 오히려 적막한 순간이 어색할 때도 있더라고요. 근데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면서 고요한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되었네요. 《고요해지기 위해 씁니다》는 조미정 작가님의 고요를 위한 필사책이에요. 저자는 한국에서 방송 구성작가로 일하다가 용감한 사람이 되려고 호주로 이주한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고, 모국어가 그리워 책을 독파하다 보니 읽고 쓰는 삶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고 하네요. 저자가 필사를 시작한 건 2018년 9월이고, 유튜브 채널 <미료의 독서노트>도 그때 열었으며, 필사의 매력을 널리 나누고 싶어서 <재밌어서 씁니다>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필사 모임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좋은 건 나눠야 제맛, 저자는 그동안 필사 모임 외에도 온라인 글쓰기 코칭, 고전 읽기 모임을 진행하며 여러 사람들과 읽기와 쓰기의 기쁨을 나눠왔는데, 이번에는 필사책 출간으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필사의 즐거움을 전해주고 있네요.
이 책은 저자가 7년 동안 쓴 독서노트에서 길어올린 고요의 문장들과 그 문장에 관한 저자의 짧은 메모가 함께 실려 있는 필사노트예요. 사실 책을 읽고 감명 깊은 구절을 노트에 적는 일이 대단히 어렵거나 힘든 건 아니지만 처음 시도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자전거를 탈 때 첫 발은 세게 내딛어야 앞으로 나아가듯,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페달 위에 발은 리듬을 타듯 자연스럽게 움직이잖아요. 아직 필사를 해본 적이 없는 경우라면 《고요해지기 위해 씁니다》로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 한 권의 책속에는 일흔일곱 권의 보석 같은 문장들과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다양한 작품을 맛보고, 필사하며 음미할 수 있거든요. 저자가 소개하는 마흔다섯 번째 작품은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1994년, 97쪽)이라는 시집이며, 필사를 위한 문장은 「이별 2」라는 시의 한 구절이네요. "아직 그대는 행복하다 괴로움이 그대에게 있으므로 그러나 언젠가 그가 그대를 떠나려 하면 그대는 걷잡을 수 없이 불행해질 것이다 괴로움이 그에게로 옮아갈 것이므로" (200p) 이 시를 읽고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하네요. "쉴 새 없이 내리는 비에 잡초도 쉴 새 없이 자란다. 잡초가 자라지 않게 약을 치는 방법도 있고 잔디 깎기 기계를 써도 되지만 손으로 뽑는 걸 좋아한다. 비에서 양분을 얻은 축축한 흙을 만지면서 신선한 초록 풀내음을 맡을 일이 이때 말고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서 간신히 해방된 내 두 손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다. 손톱이 흙과 풀의 흔적으로 채워지는 게 좋다. 마음이 산란할 때는 한 시간쯤 잡초를 뽑으면 그만이다. 잡초 한 포기 뽑을 때마다 조금씩 편안한 내가 된다.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마다 편안한 내가 된다." (199p)
심란할 때는 몸을 바삐 움직이는 게 좋더라고요. 그 다음은 차분해진 마음으로 좋은 문장을 노트에 정성껏 적는 거예요. 그럴 때 참말로 편안한 내가 될 수 있더라고요. 필사를 시작하고서 펜에 욕심이 생겨서 만년필을 장만했더니 점점 더 쓰는 것이 좋아졌어요. 좋은 책과 문장들, 그리고 펜과 노트가 있으면 언제든지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