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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정원 - 2000년 지성사가 한눈에 보이는 철학서 산책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박재현 옮김 / arte(아르테)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첫만남은 늘 어려운 것 같아요.
특히 철학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의 어떤 책으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수 있어요.
초보자에겐 한없이 높게 느껴지는 철학의 문턱을 가뿐하게 낮춰준 책이 나왔네요.
《철학의 정원》은 일본의 철학자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철학 입문서예요.
저자는 지금까지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철학서 100권을 직접 엄선하여 핵심 사상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요. 대개 철학을 역사적 흐름에 따라 시대별로 소개하는 책들이 많은데, 이 책에서는 철학서를 중심으로 철학자와 그의 사상을 요약 정리하여 알려주고, 철학적 견해가 잘 드러난 문장을 '철학자의 한마디'로 소개하고 있어서 폭넓게 철학의 세계를 만날 수 있네요. 크게 여덟 가지 주제로 나누어, 1장에서는 인생에 관한 사고, 2장에서는 인간을 통찰하다, 3장에서는 세계를 다른 눈으로 본다, 4장에서는 정치와 사회에 관한 사고방식, 5장에서는 언어에 관한 탐구, 6장에서는 과학과 방법에 대하여, 7장에서는 공상적 세계관의 사상, 8장에서는 종교를 둘러싼 사고법으로 각 주제에 해당하는 철학자의 책을 소개하는 방식이라서 관심가는 주제를 골라 볼 수 있고, 각 철학서마다 난이도를 1~9로 표시하여 각자 수준에 맞는 철학서를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주네요. 난이도 1~3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도, 난이도 4~6은 약간의 끈기와 이해력이 필요한 정도, 난이도 7~9는 예비 지식이나 해설서의 도움이 필요한 정도인데, 난이도를 나눈 것은 독자의 이해도를 고려한 것이지 철학서의 중요도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난이도가 높은 책이란 표현이 복잡하고 논리적 전개가 어려운 데다 대개 두꺼운 편이라 읽는 데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니, 쉬운 책부터 차근차근 도전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한 권의 철학서를 몇 장으로 요약한 내용이라서 전반적인 철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네요.
현재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1980~ )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2013년)은 난이도 4 , 철학의 토대는 '의미장의 존재론' (183p) 이라는 사유 방식에 있다고 하네요. 그에 따르면 무엇인가가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순간, 그 '여기'는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반드시 어떤 의미를 지닌 장소가 되고, 존재는 언제나 의미가 발생하는 장場에서만 드러난다고 해요. 의미장은 단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많으며, 반드시 현실의 장일 필요가 없고, '실재의 장'이 아니라 '의미'의 장이라는 거예요. 따라서 '의미장'에서 생각하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거죠.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1934~ )의 『생각에 관한 생각』 (2011년)에서는 심리학의 '이중 과정 이론'을 새롭게 해석하여 인간의 인지적 착각을 서술한 책이에요. 카너먼은 두 종류의 사고 과정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나누어 성질과 차이를 명확히 밝히고, 인지적 착각에 의해 일어나는 오류를 설명하면서, 판단의 오류를 없애려면 불쑥 떠오르는 시스템 1의 판단으로만 결정짓지 말고, 시스템 2의 판단을 더해야 한다는 거예요. 생각하는 방법, 즉 편견에서 벗어나 올바르게 판단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네요. 저자의 말처럼 철학을 만나면 세계가 넓어지고 가능성은 더욱 커지네요. 처음 철학을 만나는 이들에게 필요한 입문서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