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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장면들
이민경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7월
평점 :
눈길이 머무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들 하잖아요.
그러니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곳에 사랑과 행복이 있으니 말이에요.
《식탁의 장면들》은 요리를 좋아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는 책이에요. 저자는 패션 잡지의 에디터로 오랫동안 일했고,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도쿄에 이주해 살았던 지난 6년이 자신의 미식 세계에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이야기하네요. 요리하는 삶은 자신의 마음과 몸을 돌보는 소박한 첫걸음임을 전하고 싶었다는, 음식과 요리에 관한 저자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져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요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새롭게 바뀌었네요. 유명 세프의 요리만 요리인 게 아니라 집에서 직접 만드는 음식도 귀한 요리라는 것. 다들 간편하고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져서 점점 집밥을 소홀히 여기고, 레시피보다는 맛집 정보를 더 알고 싶어하는 시대에 저자의 요리 이야기는 신선한 자극이 되었네요.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였네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웠더라, 순수한 즐거움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뭐였지...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직접 만드는 일이 이토록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새삼 저자가 만든 사계절 요리를 보면서 느꼈어요.
이 책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식재료, 음식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저자만의 특급 레시피가 실려 있어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 도 좋다는 속담처럼 저자의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은 정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플레이팅으로 입맛을 돋우네요. 요즘 건강 트렌드인 '저속 노화'에 대해서 저자는 지나친 절제보다는 조금씩, 천천히 나쁜 식습관을 개선하는 자신만의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방법으로 직접 요리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어요. 건강 식단도 좋지만 라면, 햄버거, 피자, 도너츠, 탄산음료, 술을 완전히 끊는 건 저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서 저자의 말처럼 스스로 만들어 먹는 횟수를 늘리고, 꾸준히 운동하고, 잘 자면서, 가끔은 도너츠와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방향으로 관리해야 할 것 같아요. 저속 노화 식단으로 정희원 교수님이 유튜브에 소개한 '양배추 김 샐러드'에서 영감을 받아 저자만의 방식으로 만든 '양배추 아보카드 사라다' 레시피가 나와 있는데, 아보카도와 간장, 와사비, 올리브오일을 적절하게 섞어주면 완성되는 요리라서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네요. 늦은 밤 술 한 잔과 함께 곁들일 안주로도 손색이 없다는 꿀팁까지, 즐겁게 요리하고 맛있게 먹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싶어요. 생활요리인 이민경 작가님의 다정한 요리 에세이는 맛있는 요리 레시피뿐 아니라 멋진 인생 레시피까지 알려주네요. 계절의 감각, 맛의 즐거움, 생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이민경 작가님의 식탁에서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었네요.
"나는 요리를 통해 조금씩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 부족한 나를 용기 있게 대면할 수 있게 됐다. 세상의 많은 불합리하고 속상하고 억울한 일들에 가랑잎처럼 힘없이 흔들리더라도, 그래도 조금은 의연하게 흘려보내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요리가 내게 알려주었다. 진심의 요리는 주변에도 가닿았다. 남편과 가족, 친구들은 내가 만들어준 것을 귀히 여기고 맛있게 먹어주었다. ... 주어진 선물 같은 하루를 그냥 나로서 잘 살아내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보통의 집밥이 알려준 셈이다." (32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