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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
오조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7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의 놀라운 파급력은 그 자체만 보면 초능력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때로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히어로 같기도 해요.
만약 인류를 구하는 히어로가 슈퍼스타와 같은 대접을 받는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현대 사회에 히어로는 이미 포화 상태야. 너처럼 이능력을 두 개씩 가진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고, 능력 소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장래 희망 설문 조사에서는 히어로가 매년 1위를 차지하지. 사람들은 문이 좁아질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몸집이 큰 히어로들이 새로 등장하면 한쪽에서는 억지로라도 문을 넓히는 사람들이 생겨나거든. 손안에 가진 것을 전부 놓고 싶지 않아 하는 심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잖아.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분배를 하게 됐어. 능력에 따라, 종사자들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수요에 따라. 파이를 잘게 쪼개서 조금이라도 여러 명이 맛보게 하는 거지. 분명 장점도 있어. 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니까." (96-97p)
마침 이 소설에서 상상했던 일들이 현실이 된 세상을 그려내고 있어요. 근데 주인공은 히어로가 아니라 히어로 프로듀서네요.
《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는 오조 작가님의 K-히어로 판타지 소설이에요.
이제는 'K'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독보적이고 뛰어나다는 인증이 되는 것 같아요. 한국 작가가 그려낸 K-히어로는 미국 특유의 슈퍼히어로 캐릭터와는 완전 다른 매력과 특징을 지녔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만 뽑자면 '인간미'가 아닌가 싶어요.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인간적인 면에서 뭔가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 매우 현실감을 더해주는 요소인 것 같아요. 이 소설에서 주인공 조영은 서른한 살의 히어로 프로듀서인데, 실제 직함은 10년째 대리라서 실명보다는 '조 대리'로 불리고 있어요. 샤이닝컴퍼니에서 청춘을 갈아가며 일했으나 여전히 지하 사무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 서른한 살이 된 새해에 퇴사를 결심하는데 막상 사직서를 내려는 찰나에 제안을 받게 되면서 마지막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내용이에요. 음, 여기서 살짝 실망했어요. 확실하게 거절하고 사직서를 던지고 나와야 속이 후련한데, 소설에서조차 너무 현실적인 선택을 하잖아요. 근데 조영이라는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해보니, 지난 10년의 세월을 그냥 사직서 하나로 정리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처음 품었던 열정과 꿈이 있던 곳이니 말이에요. 그녀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된 신인 히어로 '써리원'과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네요. 히어로물이지만 히어로의 활약보다는 이능력이 전혀 없는 무능력자 조영을 중심으로 한 인간극장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어요. 조영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 '누구든 웬만하면 가질 수 있는 이능력이든, 그걸 못 가져서 발버둥쳐 얻는 후천적인 능력이든. 다시 태어나면 둘 중에 하나만 주지 말고 둘 다 줘라. 조물주씩이나 되면서 쩨쩨하고 난리야.' (120p)라며 아무도 듣지 못할 유서를 속으로 썼는데, 이 부분이 몹시 공감이 되더라고요. 이능력자들이 판 치는 세상에서 아둥바둥 살아가야 하는 무능력자 신세라면 죽는 순간에 너무 억울할 것 같거든요. 역시나 작가님은 이것까지 헤아려 퇴사 후 조영의 삶이 심심하지 않도록 조치를 해뒀네요. 모두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 이야기의 소제목을 보면, '누구에게나 그만둬야 하는 순간이 온다', '누구에게나 붙잡아야 하는 것이 있다', '누구에게나 함께여야 하는 시기가 온다'라고 되어 있는데, 다 읽고 나니 세 문장으로 요약이 되네요. 히어로든 아니든간에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뻔하지만 늘 통하는 진리가 있는 법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