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의 비밀 - 아름다운 그림 속 여인들이 숨겨둔 이야기
이주은 지음 / 한길아트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쉿, 비밀이야.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알 수 없는 미지의 무엇이라는 자체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길 것이다. 그 비밀이 정말 내가 알고 싶은 것인지조차 알 수 없으니까.

모든 비밀은 은밀하고 신비로운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빅토리아의 비밀>은 제목과 표지가 주는 느낌만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비밀을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비밀이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뻔한 이야기일 것이고 그 신비로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후자쪽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빅토리아 시대, 즉 영국 빅토리아 여왕 통치기(1837~1901)의 그림을 소개하는 책이다. 특히 저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제인 버든 모리스가 모델이 된 그림들이 주를 이룬다. 내가 보기에는 꽤 강하면서도 우울한 느낌의 얼굴인데 화가들에게는 꽤나 신비로운 매력을 주었던 것 같다. 그녀는 미술공예운동의 선도자인 윌리엄 모리스의 아내이자 라파엘전파의 세 거장 (밀레이,로제티,헌트) 가운데 하나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모델이기도 했다. 이들의 실제 이야기는 그림 속 비밀 이야기처럼 흥미롭다.

책을 읽으면서 라파엘전파 (Pre-Raphaelite Brotherhood)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처음에 설명이 없어 궁금하다가 중간쯤 설명이 나와있어 반가웠다. 1848년에 왕립 아카데미에 다니던 스무 살 전후의 세 명의 미술학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 개혁운동이라고 한다. 라파엘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를 지칭하지만 상징적으로 고전주의풍을 뜻하며, 그 당시 획일적인 그림 공식을 버리고, 자연으로부터 직접 영감을 얻어 그리자는 운동인데 이후에는 유미주의로 계승되었다고 한다. 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영국의 미술사까지 알아가고 있다.

아름다운 그림 속 여인들은 저마다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는 빅토리아 여왕이 나라를 다스리니까 여성의 권위가 최고였을 줄 알았다. 물론 여왕의 권위야 최고였겠지만 여성 자체의 권위는 미약한 수준이었다. 여자는 남편의 보호 아래 아무런 사회적 책임도 권리도 없었고 오직 남편에게 충성할 의무만 있었다고 한다. 사랑하고 믿음직한 남편을 만났다면 행운이겠지만 무자비하고 무심한 남편을 만났다면 그 불행은 오로지 아내라는 여성의 몫인 것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빅토리아 시대 소설가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소설로 한 인간 내면에 극단적인 선과 악을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야기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를 처단한 영웅 페르세우스 이야기를 떠올린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목을 치고 오는 길에 묶여 있는 안드로메다를 발견하고 그녀를 구해낸다.

그런데 메두사와 안드로메다는 둘 다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다가 저주를 받은 여인들이다.

아름다운 여인과 저주 받은 괴물.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의 순결, 정조와 남성의 금욕, 절제를 강조할수록 사회와 예술은 성적인 환상과 에로티시즘에 빠져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다.

작가가 말하는 로제티 그림의 매력은 바로 관능이 철철 넘치는 화려한 여인 이미지에서 어떤 정신 수행을 통해 얻은 고결한 정수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매력은 그림 속 여인보다 그 주변 세밀한 요소들의 상징을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모든 것이 드러나 있으면서 감추어진 로제티의 그림은 하나의 작품이면서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로제티 이외에도 다른 예술가들의 아름다운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나에게 이 미술 작품은 새롭게 알게 된 비밀들이다. 비밀을 조금 알게 되니 욕심이 생긴다.

저자는 영국의 박물관과 도서관을 둘러보면서 이 곳의 분위기는 오랜 세월을 두고 형성된 취향이지, 하루 아침에 디자인된 형태가 아니라고 했다. 과연 어떤 곳이길래 그토록 마음을 움직였을까?

 

취향 (taste ) 그 자체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은 기호 (favorite)이다.

취향은 미적인 내공을 쌓은 자, 즉 오래도록 축적해온 안목과 미에 대한 애착과

오랜 세월 추구해온 미적 방향성이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취향을 가지기 위해서는 미적 환경에 한껏 노출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는 영국처럼 박물관과 도서관이 많지는 않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원래 빅토리아의 비밀은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없다면 단풍이 물들고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바라보자.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누구나 취향을 가질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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