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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순원 지음 / 뿔(웅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어린 시절에도 친구 같은 나무가 있었다. 우리집 앞마당에 있던 라일락 나무였는데 봄만 되면 그 라일락 향기가 골목길 가득 퍼졌다. 내가 향기를 뿜는 것도 아니건만 우리집 라일락이라는 이유만으로 괜히 으쓱해지고 자랑스러웠다. 마당에서 나뭇잎이랑 꽃을 따다가 소꿉장난도 하고 맘에 드는 꽃은 꽃병에 꽂아 두기도 했다. 그냥 늘 그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있던 라일락 나무는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향기로운 친구였다.
작가 이순원님이 태어나고 자란 시골집에도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고 한다. 한 백년 전쯤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인데 이 책에 나오는 바로 그 할아버지나무이다.
할아버지 나무는 손주 같은 작은 나무에게 이야기를 들려 준다.
“ 옛날 옛날에 열 세 살 어린 신랑이 있었단다……”
작은 밤톨 하나가 커다란 아름드리 밤나무가 되는 과정과 나무마다 봄을 맞이하는 나름 대로의 방식을 이야기 해준다. 우리도 작은 나무와 함께 그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무가 자라나면서 겪게 되는 상황들이 우리 사는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열 세 살 어린 신랑이 심었던 나무들이 5년, 10년이 흘러 저마다 열매를 맺자, 사람들은 그 열매를 부러워 하면서도 정작 나무를 심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묘목을 준다고 해도, 그 사람들은 어느 천 년에 묘목이 자라 열매를 맺을까, 하며 심을 생각조차 안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나무는 말한다.
“ 아이들도 빨리 자라지만, 나무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빨리 자란다고 한 말 말이다.
그건 우리 나무에 대해 나무를 ‘나무’라고 부르는 것만큼의 진리거든.”
나무가 제대로 나무 구실을 하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나무를 심은 사람이나 나무 자신이나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 시간을 빠르다고 한 것은 우리 인생과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에는 한없이 길던 하루가, 어른이 되고 나서는 너무나 짧게 느껴진다. 하루 시간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시간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변한 것이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기다릴 줄 안다. 나무가 제 뿌리를 깊게 내릴 때까지.
세상 일도 그렇다. 못할 것 같은 일도 매일 조금씩 하다 보면 어느새 익숙하게 잘 해 낼 수 있다. 기어 다니던 아기가 앉아 있고 어느새 아장아장 걷는 모습처럼 말이다.
뭔가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시작이 있어야 한다.
우리 마음에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가?
실제로 나무를 심어도 좋을 것 같다. 아이마다 한 그루의 나무, 바라는 소망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이다.
“우리가 나무로 한세상을 살다 보면, 매화나무나 벚나무처럼 다른 나무보다 일찍 꽃을
피워 부러움을 사는 나무가 있지. 반대로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늦은 만큼 더 알차게
자신을 채워가는 나무도 있는 거란다.”
대추나무는 매화나무가 일찍 꽃을 핀다고 시샘하지 않는다. 나무마다 자기 몫을 알기 때문이다. 매화나무는 대추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부러워하지 않는다.
네가 더 똑똑하다고, 네가 더 많이 가졌다고 시샘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자기 때를 모르는 한심한 사람들뿐이다. 꽃을 먼저 피운들, 열매를 많이 맺은들 나무는 제 뿌리만 든든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책을 통해 할아버지나무의 지혜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