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예술은 너무나 멀리 있는 미지의 세계였다. 전공자가 아닌 사람에게 예술은 고상한 취미 내지 그들만의 세계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예술이 나를 멀리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술을 외면하고 있었다.
<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 >은 미술에 대해 비전공자인 저자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다. “ 미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며 무관심한 사람들.
천재화가 혹은 미치광이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사람으로 이중섭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화가 이중섭을 통해 한국 미술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 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사랑이 한국 미술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예술은 현실에 반영이며 현실과 괴리된 세계가 아니었다. 이중섭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교과서에 실린 그림 몇 점이 전부였는데 그의 생애를 살펴 보니, 정말 이 사람이야말로 예술과 자신이 혼연일체가 된 진정한 예술가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중섭의 예술 논리는 매우 간명하고 단호했다고 한다.
“그림은 내게 있어서는 나를 말하는 수단밖에는 다른 것이 못 된다.”
예술이 곧 자기 표현이었다.
이중섭 예술의 흐름은 자신의 성장과 자아의 발견 -> 연애 -> 결혼 -> 첫아들의 죽음 -> 가족의 형성과 이별 -> 자아 분열 등 자신의 인생 행로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평가 되기도 했지만 그의 예술에는 시대의 아픔이 들어 있으며 너무나 한국적인 화가였다. 그만의 뿌리깊은 공동체적 자아관은 한국적인 예술을 표현해냈다. 스스로를 화공, 그것도 참다운 화공, 정직한 화공이라고 했는데, 그는 자신을 독립된 예술가가 아니라, 중세 시대의 도공들처럼 하나의 공동체에 봉사하는 성실한 일꾼으로 정의했다고 한다.
< 이중섭 예술의 시기 구분 >
1. 소그림 (오산중학교 이후 ~ 1956년 사망까지)
2. 엽서그림(1940년 ~ 1943년)
3. 닭그림과 음담패설(1945년 결혼 ~ 사망까지)
4. 군동화(1946년 첫아들의 죽음 ~ 1956년 사망까지)
위와 같은 그의 수많은 예술 작품보다 나를 더 감동시킨 것은 바로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평소 말수가 적었다는 그가 편지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언어들은 너무나 적극적이고 열렬하다. 그의 편지는 어느 예술 작품 못지않은 정성과 노력이 담겨 있다.
편지지 여백에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과 사랑의 글이 어우러져 내게는 그의 어떤 작품보다 감동을 준다. 또한 봉투에 쓰인 글씨체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나의 귀엽고, 나의 소중하고, 나의 가장 크고 유일한 기쁨”
“최애의 사람, 내 마음을 끝없이 행복으로 채워주는 오직 하나의 천사,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남덕군(君) !”
“우리들 부부보다 강하고, 참으로 건강한 부부는 달리 또 없을거요. 대향이는 남덕이를 믿고, 남덕이는 대향을 믿고 있지 않소? 세상에 이처럼 분명한 사실이 또 어디 있겠소.”
여기서 남덕은 이중섭이 아내 마사코에게 붙여준 한국식 이름이고 대향은 이중섭의 호다.
강력하게 정신적으로 아내와 결합 또는 의존을 하고 있던 그에게 아내와 두 아들의 빈 자리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편지마다 아내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그 사랑의 굳건함을 자꾸 확인하는 표현이 많은 것도 불안한 심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당시 이중섭의 나이는 37세, 결혼 8년째였다고 한다.
그는 어린애처럼 순수하고 맑은 사람이었다. 돈과 이익, 세속적인 욕심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예술가의 영혼은 그 순수함이 마치 세상에 버려진 천사처럼 상처 받지 않았을까.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 결합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음을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말해준다. 그의 아내가 왜 그와 만날 수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최근 이중섭 위작이 그의 차남과 관련되어 있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그의 아들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함께 하지 못했던 세월 만큼이나 낯설은 존재였던 것일까.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아들, 아버지의 예술을 돈으로 생각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가족에게마저 이해 받지 못한 예술가의 비극을 보게 된다.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가 이중섭, 그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