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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정보라 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 《아이들의 집》이 나왔어요.
제목만으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 무엇보다도 첫 장면은 처음 읽을 때는 긴가민가 하다가 나중에 진실을 알고 난 뒤에 밀려오는 충격이 더 큰 것 같아요. 이 장면은 몹시 괴기스럽기는 해도 환상이나 꿈으로 바라보면 엄청 놀랄 만한 수준은 아니에요. 근데 현실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진술이라면... 모호했던 것들이 너무나 선명해지면서 뒷골을 강타하는 충격이 있네요. 하얗게 눈으로 덮혀 있는 땅, 그 아래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눈이 다 녹기 전에는 알 수 없듯이, 아주 서서히 베일을 벗겨나가는 방식, 이것이 정보라 작가님만의 장르였네요.
이 소설에서 당황스러웠던 건 이름이에요. "무정형은 눈을 뜬다.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는 날이다. 예방주사를 맞혀야 한다." (12p)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무정형'은 사람 이름이고,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사물이나 사람에게 붙여진 공식적인 이름을 멋대로 바꿔버리면 일종의 리셋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무정형, 정사각형, 삼각형, 역삼각형, 마름모, 가루, 줄넘기, 평행선, 색종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인데, 로봇에겐 '앨리스'라는 이름이 있다는 걸 굳이 알려주네요. 등장인물들에게 붙여진 낯선 이름들은 그들을 특정한 누군가로 인식하지 않은 채 말과 행동으로만 파악하게 만들어요. 마치 '네가 신경써야 할 건 이름 따위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느냐라고!'라고 속삭이듯 말이죠. 그래서 '아이들의 집'이 어떤 곳이고, 무정형이 왜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가서 예방주사 맞히는 일을 하는지,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와 일상의 모습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다른, 그러면서도 사건을 통해 깊숙하게 자리한 병변을 끄집어내고 있어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 드러내어 공론화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개선할 수 있겠어요. 소설일 뿐이라고, 조금 무서운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그냥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주제들을 담고 있네요. 무겁지만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문제라서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