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연대기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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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첫 소설집 제목은 「그 여자의 다른 입들」, 박사 논문 제목은 「폭력의 알레고리」 , 국내에 출간된 단편소설집의 제목은 「가장자리」 예요. 이 글을 쓴 사람은 미국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예요. 그녀의 삶을 알고나니 이전에 쓴 글의 제목들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어요.

《물의 연대기 The Chronology of Water》는 리디아 유크나비치가 2011년에 쓴 회고록으로, 국내에는 2025년 5월 처음 출간된 책이에요. 이 책은 올해로 78회째를 맞은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크리스틴 스튜어트 감독의 데뷔작 《물의 연대기》의 원작이에요. 할리우드 배우로 유명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원작을 읽기 시작해 40페이지 만에 리디아에게 이메일을 보내 영화 판권을 샀고, 직접 감독을 맡아 이머전 푸츠 주연의 동명 영화를 완성했다니 놀라워요. 솔직히 첫 문장은, 단숨에 공기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고 감히 측정할 순 없지만 가장 깊은 슬픔과 고통의 현장이라서 꼼짝 할 수 없었네요. 뱃속의 아기가 죽었는데, 보통의 출산처럼 똑같이 유도제를 맞고 진통하며 분만 과정을 거친다니, 어쩔 수 없는 건 알지만 너무 가혹한 현실이네요. "마침내 나의 딸이, 죽어버린 작은 소녀 물고기가 세상으로 나오자 의사와 간호사는 딸을 내 가슴 위에 올려줬다, 살아서 태어난 아기와 다를 것 없이. 나는 딸을 꼭 안고 딸에게 입을 맞추고 말을 걸었다, 살아서 태어난 아기와 다를 것 없이, 전혀 다를 것 없이. 그토록 긴 딸의 속눈썹. 여전히 발그레한 두 볼. 어떻게? 나는 모르겠다. 볼이 파리할 거라고 예상했다. 딸의 입술은 장미꽃 봉오리. 기어이 사람들은 아이를 데려가버렸고, 그때 마지막으로 나는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생각을 했다. 그래, 이게 죽음이구나." (17p)

그녀는 왜 이 장면으로 인생을 회고했을까요.

리디아는, "가끔은 내가 평생 헤엄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 기억 속에 모여 있는 것들은 전부 물처럼 굽이치며, 살면서 겪은 사건들 주변으로 에둘러 흐른다." (41p)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녀는 고통을 극복했다기 보다는 고통의 바다 위를 헤엄쳐 온 것 같아요. 각 장에 적혀 있는 소제목들, "숨 참기, 파랑 속에서, 촉촉한 것들, 다시 살아나기, 익사의 이면"에서 그녀가 느꼈던 감정들이 무엇인가를 들려주고 있어요.

이 책은 리디아의 불행한 삶을 나열하는 내용이 아니에요. 물론 어린 시절부터 그녀와 언니가 겪었던 일들은 명백히 아동학대였고, 대학 시절의 방황은 범죄였으며, 그녀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예요. 불안한 소녀의 마음을 안정시켜준 친구, 수영, 책... 우연히 쓰게 된 글들이 그녀를 살렸어요. 리디아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제가 찾아낸 것은, "살아낼 수 있는 이야기를 발견할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라." (396p)라는 문장이에요. 우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만들어가야 해요. 리디아는, "아름다운 것들. 우아한 것들. 희망찬 것들은 때때로 어두운 곳에서 생겨난다. 게다가, 나 같은 여자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내 목적이니까." (397p)라고 했는데, 《물의 연대기》를 통해 그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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