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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푸른 벚나무
시메노 나기 지음, 김지연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나도 불과 몇 달 전에는 꽃이 활짝 피어 있었는데, 하면서 눈이 부셨던 햇살을 떠올렸다.
그때의 추억은 어느새 청춘을 향한 선망으로 바뀐다. 두려움 없이 전진하는 청춘의 강인함을 생각하고 있자니 서서히 끝이 보이는 내 모습에 서글퍼진다." (125p)
인간은 태어나서 오래 살아봐야 100년, 그에 비해 나무는 최적의 환경에서 1000년 이상 살 수 있다고 해요. 함부로 베어버리지만 않으면 그 땅의 주인은 나무일 텐데... 이 소설을 읽다가 어릴 적 살던 집 마당에 있던 라일락 나무가 생각났어요. 태어나서 쭉 어른이 될 때까지 함께 지냈던 라일락 나무, 근데 지금 그곳엔 새로운 건물이 세워져 있어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허전하고 쓸쓸하네요.
《그해 푸른 벚나무》는 시메노 나기 작가님의 소설이에요. 일본에서 유명한 힐링소설 스타작가라는 소개글처럼 이 소설은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이야기예요. 앞선 문장에서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고 말했던 '나'의 정체는 카페 체리 블라썸 마당에 있는 100살이 넘은 벚나무예요. 100년 넘게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산벚나무는 3대째 이어온 '체리 블라썸'의 여성들을 지켜주고 있어요. 히오의 외할머니 야에가 호텔을 운영하다가 야에의 딸 사쿠라코가 대를 이어 호텔을 양식 레스토랑으로 바꿨고, 지금은 사쿠라코의 딸 히오가 서른 살이 되던 3년 전부터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호텔에서 레스토랑으로, 카페로 변했지만 가게 이름은 벚꽃을 뜻하는 '체리 블라썸'으로 한결 같아요. 그만큼 벚나무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할 수 있어요. 늘 곁에서 지켜봐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한 것인지... 바로 그 벚나무의 시선으로 히오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가야 할 때를 알고 있는 벚나무 자신의 속마음도 들려주고 있어요. "벚나무는 여러 생명체와 얽혀 살면서 꽃을 피워. 그러니까 혼자 애쓸 거 없어.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앞으로 걸어가면 돼." (229p)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네요. 벚나무와 그녀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야 알게 됐네요.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지켜줬구나, 그래서 다시 꽃을 피워냈구나. 잔잔하면서도 뜨거워지는 감동이 있네요. 만약 나였다면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라일락 나무를 지켜줄 방법은 없지만, 어쩐지 이런 내 마음을 라일락 나무는 알아줄 거라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내 인생에서 오직 하나뿐인 라일락 나무,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나무 한 그루는 있는 법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