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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한가득 채우기에 급급했던 삶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시점이 오겠지요.
아직은 그럴 정도로 내면이 무르익지 못했기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하지만 《바움가트너》를 통해서 그 마음을 엿본 느낌이에요.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폴 오스터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고 해요. 투병 중이던 폴 오스터는 이 소설의 주인공을 은퇴를 앞둔 바움가트너로 정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움가트너의 삶이 묘하게 폴 오스터와 겹쳐져 보이게 만들었네요. 소설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되어 주인공과 수많은 타인들을 이어주고, 독자들에게도 옆자리를 내어주는 것 같아요. 10년 전 아내 애나를 잃은 바움가트너가 불현듯 아내에 대한 기억들을 끄집어내면서 잔잔했던 그의 일상에 물결이 일렁이게 되는 이야기예요. 애나와 바움가트너의 첫 만남, 그건 분명 우연이었을 테지만 특별한 인연은 운명이라고 부르지 않나요. 5월 말의 어느 오후 앰스터댐 애비뉴의 헝가리안 페이스트리 숍에서 '우연히' 애나의 옆 테이브에 앉았던 바움가트너는 그곳에 앉을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거기가 그가 앉을 수 있는 유일한 빈자리였기 때문이에요. 슬쩍 로맨스적인 요소를 얹고 싶어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꾸며댈 수도 있지만 그때 그 순간 애나는 읽고 있는 책으로 얼굴이 가려진 상태였어요. 중요한 건 바움가트너가 애나 옆자리에 앉았고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고전적인 의미의 연애편지는 아니지만 꽤나 많은 양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키워나갔다는 거예요. 애나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미발표 유작들이 바움가트너가 집필하고 있는 원고들과 뒤섞여, 아주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던 무언가를 끌어내고 말았네요. 2024년 4월 30일, 일흔일곱의 생애를 살다간 폴 오스터는 우리에게 《바움가트너》를 남겼고 그의 빈자리는 수많은 작품들이 대신하겠지요. 주디스는 사람과의 연결을 강조했지만 바움가트너는 삶의 이야기를 통해 한층 친밀하게 다가왔네요. 책 덕분에 삶은 더 좋은 것이 되었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12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