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아래 시한폭탄
알프레도 고메스 세르다 지음, 김정하 옮김 / 삐삐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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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 (153p)

씁쓸한 현실을 확인시켜주는 말이네요. 진실보다 더 그럴 듯한 가짜, 거짓, 위선에 더 반응하는 세상을 향해 MK가 폭탄을 터뜨렸거든요.

《내 발아래 시한폭탄》은 스페인 대표 문학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프레도 고메스 세르다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주인공 MK는 열여섯 살 여학생인데, 남자친구인 카를로스와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어요. 두 아이의 희생양이 된 사람은 학교에서 생물학 담당인 L 선생님이에요. 그가 잘못한 건 전혀 없어요. 하지만 언론들은 재판도 받지 않은 L 을 범죄자 취급을 하며 여론 몰이를 하고 있어요. MK 가 터뜨린 폭탄이 시의적절하게 논쟁거리를 던져줬기 때문에 L 은 언론의 먹잇감이 된 거예요. 안타깝게도 L 은 자발적인 고독을 추구하는 외톨이, 주변에서는 그를 특이한 사람이라고 여길 뿐, 그를 잘 알지 못해요. 아주 작은 희망은, L 에게 20여 년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고 있는 친구 파트리시아와 헤르만이 그를 위해 나섰다는 거예요. 짧지만 두 친구가 L 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꽤 인상적이에요. L 은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 이것은 친구 간의 우정을 뛰어넘는 인간에 대한 신뢰라고 느껴졌어요. 좋은 인생이란 좋은 사람이 되는 것, L 은 내성적이고 독특한 사람이지만 좋은 사람이었고, 파트리시아와 헤르만이라는 좋은 친구들을 곁에 뒀다는 점에서 인생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다만 지금 겪고 있는 일은 끔찍한 교통사고 같은 거죠. 피할 수 없었던 사고로 인해 후유증은 클 테지만 두 친구들이 상처 입은 마음을 잘 치유해줄 거라고 믿어요. 반면 MK는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에요. 미성년자인 데다가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이...

사건의 시발점이 된 MK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어찌보면 이 부조리한 세상이 열여섯 살 어린애에게 폭탄을 쥐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화풀이 대상이 되었던 MK, 엄마와 아빠는 MK에게 말을 맞춘 것처럼 똑같이 "건방지게 굴지 마!" 라며 손찌검을 했어요. 폭력 앞에 무력해진 MK는 마음 속에 분노가 쌓였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었는데, 열여덟 살 천방지축 카를로스가 슬쩍 자극했던 거예요. 중요한 점은 터뜨린 건 MK 자신이라는 거예요.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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