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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
정선임 외 지음 / 해냄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선집을 의미하는 앤솔로지는 '꽃다발'을 이르는 그리스어 '안톨리기아(anthologia)'에서 유래했다.
... 여기, 새로운 꽃다발을 엮기 위해 네 명의 작가가 뭉쳤다. 우리는 '나와 이방'이라는 주제를 펼치기 위해 문지방을 넘고 빗장 너머 낯선 땅에 발을 디뎠다. 작가들은 포르투갈 리스본, 인도 벵갈루루, 태국 방콕을 거쳐 사이판까지 경계를 넘는다.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곳'에서 낯선 얼굴을 목도한다. 그 풍경 속에서 조우한 낯선 타자들의 모습을 한 편의 소설로 직조했다." (7p)
첫 장에 적혀 있는 작가의 말이에요. "너무나 선명해서 다정한, 낯선 곳들"이란 제목으로 이 소설집의 주제와 방향을 설명해주고 있어요. 당신의 손에 들려 있는,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라는 책은 네 명의 작가가 쓴 네 편의 소설 앤솔로지라고 말이에요. 뭔가 낯선 이의 다정한 초대를 받은 느낌이었어요. 정선임 작가님의 <해저로월>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김봄 작가님의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는 인도 벵갈루루에서, 김의경 작가님의 <망고스틴 호스텔>은 태국 방콕에서, 최정나 작가님의 <낙영>은 사이판에서, 저마다의 색깔로 낯선 그곳에서 부유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어요. 여행을 좋아하지만 실제로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라서,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가보진 못했어요.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먼 과거였다면 낯선 땅의 이야기를 그저 가본 사람의 말과 글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영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보니, 안 가봤지만 가본 것 같은 장소들이 꽤 많더라고요. 그래서 공간이 주는 이질감은 크지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사람들, 군중 속에서 혼자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해저로월>에서는 주인공 수정이 어릴 적에 한 번 봤던 고모 미경이란 존재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고, 표제작이 된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에서는 제로 하우스에 모인 네 명의 작가들을 통해 서로 다른 입장에서 오는 미묘한 감정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망고스틴 호스텔>은 그야말로 과일 망고스틴이 떠오르는 이야기, 딱딱한 껍질 안에 육종마늘 같은 하얀 속살을 가진 열대과일의 익숙한 과즙처럼 주인공이 겪는 상황들에서 기시감을 느꼈고, <낙영>에서는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한 끔찍한 악몽을 꾼 느낌이 들었네요.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하여, 서로 다른 네 개의 시선들이 만들어낸 풍경들을 마주했네요. 나와 너를 가르는 경계가 무엇인지, 그 경계를 넘나드는 특별한 이야기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