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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일기장 - 백문백답으로 읽는 인간 다산과 천주교에 얽힌 속내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4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잖아요.
여기서 이름이란 단순히 명성만이 아니라 생애 전반을 걸쳐 무엇을 이뤄냈느냐, 후대에 남긴 유산이 무엇인가를 의미할 텐데, 이 속담에 어울리는 한 분이 떠오르네요. 다산 정약용,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 후기의 학자로서 거의 모든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긴 인물이죠. 그동안 다산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책은 읽어봤지만 정작 집필한 책들은 읽어보질 못했는데 "최초 완역, 일기에 숨은 진실"이라는 문구에 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네요.
《다산의 일기장》은 고전학자 정민 교수가 다산 정약용이 남긴 4종 일기장을 주석과 함께 우리말로 옮기고 관련 자료와 해설을 첨부한 책이에요.
우선 백문백답을 통해 다산이 쓴 4종 일기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 그리고 일기 작성자인 젊은 날의 다산이 처한 상황들을 풀어내고 있어요. 우리가 짐작하는 내밀한 독백의 글이 아니라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건조한 문체로 사실만 나열했다는 점에서, "다산에게 일기 쓰기는 다분히 정치적인 행위였다. 동선에 따른 정황과 만난 사람과의 대화, 서로 오간 문서를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훗날의 증언으로 남기려는 의도적 배치가 감지된다." (21p) 라고 분석하고 있어요. 다산의 일기를 완역하면서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 것은 일기만으로는 맥락을 알 수 없기 때문인데 그럴 수밖에 없는 다산의 속사정이 있어요. 바로 천주교 신앙과 관련된 문제로 평생 시달려야 했으니, 임금과 천주를 모두 사랑할 수 없는 모순적 상황이 그대로 반영된 기록이기에 액면 그대로 읽는 대신 세심한 독법을 적용한 거예요. 자신이 옳다고 믿거나 부당한 일에 대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던 젊은 다산이 천주교에 등을 돌려 전향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결백을 입증하고자 천주교 지도자 검거에 앞장서야 했으니 인간적 고뇌와 고통이 얼마나 크고 깊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못하겠어요. 원문의 내용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인물들의 관계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어서 다산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정민 교수는 정약용을 '모순의 시대에 모순의 갈등 속을 살다가 간 인물' (26p)이라고 평했는데,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감정을 느꼈네요. 일말의 감정도 표현하지 않았지만 다산의 일기 속에 숨어있는 진심을 볼 수 있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