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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
나혜원 지음 / 사유와공감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바다, 맑은 날의 바다는 참으로 다정해보여요.
멀리서 바라볼 때는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찰싹, 매서운 손길로 경고하는 듯, 몹시 난폭한 성질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요. 해수욕장에서 놀다가 물에 빠진 뒤로는 바다 속에 들어가질 않았어요. 가끔 바다를 보러 가지만 살짝 발끝만 대었다가 얼른 도망치게 되더라고요.
파란 바다 속에 풍덩 빠진 여자와 해마, 표지 그림과 함께 '소녀는 자신이 해마라고 말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는 책을 읽었어요.
《해마》는 나혜원 작가님의 소설집이에요. 여기엔 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첫 번째 이야기인 <변호할 권리>를 읽다가 흠칫 놀랐어요. 입이 찢어져라 웃는 표정의 그녀가 내뱉는 말들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더군다나 그 말들이 꽤나 논리정연해서 무서웠던 것 같아요. 자신을 변호할 정도로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것 같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거든요. 아무리 불행한 삶이었다고 해도 그녀의 행동이 정당화되진 않는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헤어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 갇힌 자의 외침이 때로 미친 자의 웃음으로 들리는 듯...
"사람은 누구나 경험한 범위만큼만 이해할 수 있는 법이에요. 그것이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말이에요.
··· 만약 당신이 지금부터 털어놓는 내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분명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란 거예요.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기쁘지 않아요? 이 황량한 세상에 누구라도 당신보다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는 어차피 타인과 불행의 크기를 견주며 낄낄거리는 악한 존재들이니까." (13p)
글쎄요, 적어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라면 남의 불행에 낄낄거리는 수준은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는 끔찍했고, 네 번째 이야기에선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며, 다섯 번째 이야기는 속이 답답해졌고, 여섯 번째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슬펐어요. 어느 모로 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은 이 세상에 불행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인지를 알려주고 있어요. 그뿐이라면 굳이 애써 읽을 이유가 없겠지만 이야기 속 그들은 우리에게 외치고 있어요. 살고 싶다고, 죽을 만큼 힘들지만 견뎌내려면 그 아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이 필요하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