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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전집 1 - 소설 ㅣ 다시 읽는 우리 문학 1
이상 지음 / 가람기획 / 2025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천재 작가 이상을 모르는 사람을 없을 거예요.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 그의 작품 세계는 어떠한지 자세히 묻는다면 이름 석 자 외에 답할 게 없더라고요. 겨우 몇 편의 작품을 알고 있고,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 세계라는 해설만으로는 한참 부족한 거죠. 어찌하여 이상 문학은 20세기 한국문학사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을까요. 심도 있게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읽어봐야 해요. 그의 작품 중 소설 16편을 모은 책이 나왔어요.
《이상 전집 1》은 가람기획 '다시 읽는 우리 문학' 시리즈 첫 번째 책으로, 발표 연대순으로 소설 16편이 실려 있어요.
<12월 12일>은 이상이 쓴 최초의 한글 창작이자 최초의 소설,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 해요. 이 소설은 주인공 '나'의 비극적인 인생을 다루고 있으나 제삼자의 시점이 아닌 주인공의 시점에서 들려주고 있어요. 주인공은 적빈(몹시 가난함) 때문에 오랜 친구인 M군의 만류에도 고향을 등지고 이국 땅으로 떠나 얼마간의 재산을 모았고, 10여 년 후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집과 재산이 불에 타버려 잿더미가 되고 말아요. 충격에 빠진 주인공은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오늘이 며칠입니까?"라고 물었고, "12월 12일!"이라는 대답을 듣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이 날짜는 그가 고향을 떠나던 그 날인 거예요. 어린애가 별안간 '으아' 울기 시작하자 주인공은 이 소리가 인생극의 첫 막을 여는 사이렌이 틀림없다면서 마지막 말을 전하고 있어요.
"너는 또 어느 암로를 한번 걸어 보려느냐. 그렇지 아니하면 일찍이 이곳을 떠나려는가. 그렇다. 그 모닥불이 다 꺼지고 그리고 맹렬한 추위가 너를 엄습할 때에는 너는 아마 일찌감치 행복의 세계를 향하여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으아! 으아! 이 소리가 약하게 그리하여 점점 강하게 들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148p)
일제가 조선을 강제병합하여 식민지로 만든 해인 1910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살아야 했던 이상의 삶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사실 소설 도입부에서 주인공은, "불행한 가운데서 난 사람은 끝끝내 불행한 운명 가운데 울어야만 한다. 그 가운데에 약간의 변화쯤 있다 하더라도 속지 말라. 그것은 다만 그 '불행한 운명'의 굴곡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36p) 라며 자신의 참담한 인생에서 일그러진 결론을 제시하고 있어요. 비극의 시대에 태어나 삶에 드리운 그림자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천재 시인, 천재 작가는 스물일곱의 짧은 생을 살다 갔네요.
이상의 작품 <날개>의 첫 문장에서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208p) 라고 했는데, 우리가 그의 삶과 작품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더 이상 '박제'가 아닌 생생한 날갯짓으로 심장을 뛰게 하지 않을까요. 난해한 초현실적인 작품 세계의 본질은 비극적 운명에 맞선 용기와 희망인지도 모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