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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틈새
마치다 소노코 지음, 이은혜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평점 :
온전히 그 '순간'에 몰입하여 '경이로움'을 느꼈던 그때의 장면을 잊을 수 없어요.
깊은 어둠이 서서히 물러나는 듯 푸르스름한 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옆에 놓인 종이 위에 뭔가를 적었더랬죠. 그동안 숱한 새벽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새벽'은 그때였네요. 아마 다들 각인해놓은 듯 지울 수 없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새벽의 틈새》는 마치다 소노토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일본에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의 잘 보여주는 작가이자 대중적인 인기 작가로 사랑받는 분이라는데,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났네요. 삶과 죽음 사이 그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라고 느꼈어요. 소설은가족장 전문업체인 게시미안을 배경으로 여성 장례지도사인 사쿠나 마나와 그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미처 살피지 못했던 마음들을 돌아보게 만드네요.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큰 파도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모래성인 거지. 하, 더러운 세상." (12p)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떠드는 흔한 대화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자신들의 상황을 큰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에 비유한 것이 뭔가에 찔린 듯 따끔하게 와닿네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의 삶이 한순간에 이해되면서, 마치 곁에 있는 또 한 명의 친구가 된 듯이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아요.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장례식장에서 마나는 소중한 사람들 떠나보내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직원이니까 업무의 일환으로 생각하다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의 마지막을 맡게 되는데, 그 과정들이 너무 생생하게 묘사되어서 슬프고 아팠어요. 기쁨과 즐거움은 금세 휘발되는 느낌인데, 왜 슬픔과 아픔은 무겁게 박히는 느낌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이별하고, 남은 생을 살아야 할까요. 새벽의 틈새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들이네요.
"사람은 큰 슬픔을 맞닥뜨리고 좌절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들 하잖아. 하지만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 상대를 잃기 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사람도 있지. 그 아픔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어." (3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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