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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4년 11월
평점 :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는 이심전심, '내 마음이 이러니 네 마음도 같겠지.'라는 거예요.
두 눈으로 똑같이 봐도, 저마다 생각과 느낌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마음일 거라고 단정할 수 있겠어요. 근데 위대한 예술만큼은 공평하게, 모두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어요. 물론 시대에 따라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요.
《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은 화가들의 삶과 그림을 안내하는 책이에요.
저자는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미술 담당 기자로서 문화·예술 케이블 채널 한경arte TV 에 고정 출연 중이며 매주 토요일마다 미술과 문화재에 관한 칼럼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을 연재 중인데, 국내 문화·예술 분야 최고 인기 칼럼답게 독자들의 출간 요청으로 그동안 연재됐던 글을 모아 다듬은 첫 책이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이고, 이번 책은 그 후속작이라고 하네요. 어쩐지 명화를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화가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더라고요. 화가로서의 역량뿐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저자의 말처럼 어떤 그림은 천마디 말보다 더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데, 화가의 삶부터 미술계 흐름과 시대 상황까지, 좋은 그림 한 점에는 한 권의 책보다 더 풍부한 정보와 깊은 고민이 담겨 있기에 '그 시대와 그 사람'을 알면 더 깊이,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네요.
이 책에서는 화가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네가지 주제로 나누어 삶과 예술의 빛깔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여주고 있어요.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여정의 시작인 신념, 사랑과 증오가 얽힌 감정의 실타래인 애증, 어려움을 딛고 나아가며 얻는 깨달음인 극복, 상처를 넘어 새로운 시작을 향한 용서까지, 파란만장 흥미로운 인생 드라마를 만날 수 있어요.
예전에 존 싱어 사전트의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1885, 테이트) 라는 작품이 주는 여름밤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매료된 적이 있는데, 원래 그는 초상화가로 유명했다고 해요. 1884년 세계 최고의 미술 전시회가 열린 프랑스 파리의 살롱 전시장, 5,000여 점의 작품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건 젊은 미국인 화가의 그림 <마담 X>였대요. 우와, 검정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지금 21세기의 눈으로 봐도 세련되고 아름다워요. 당시 파리 사교계의 톱스타, 비르지니 아멜리 아베뇨 고트로를 모델로 그렸으니 화제작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인데, 칭찬이 아닌 비난 세례를 받았다니 이상하죠? 사전트의 작품이 욕을 먹은 이유는 그림 실력 때문이 아니라 그의 그림이 프랑스의 불편한 진실을 건드렸기 때문이래요. 미국 문화사학자 폴 피셔셔는,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전트의 그림은 파리 시민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자신들의 퇴폐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87p)라고 설명해주네요. 사전트는 사람들의 비난에 절망했지만 이 작품을 자신의 대표작이라 여기며 항상 작업실에 걸어뒀다고 해요. 책 속 사진을 보면 사전트의 작업실 풍경이 나오는데, 거의 실물 크기의 초상화라서 직접 봤을 때의 감동이 더 클 것 같아요. 사전트의 그림에 감동한 어떤 화가는 그의 그림이 외모라는 베일을 꿰뚫고 사람의 속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극찬을 했는데, 사전트는 오히려 불쾌하게 여기면서 자신은 있는 그대로를 그렸다고 말했대요. 그게 바로 천재성인 거죠. 보이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그렸을 뿐인데 인물의 내면과 시대를 담아냈으니 말이에요. 미술사에 남은 명작들을 우리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인생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감동과 즐거움이 있었네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