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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 - 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
샤를 페팽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0월
평점 :
샤를 페팽은 오늘날 프랑스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철학자이자 작가라고 해요.
그는 우리가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는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과거는 지나가버린 시간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기억을 잃지 않는 한 과거는 사라지지 않아요. 과거 심리학자들은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과거를 수용하도록 이끌었지만 신경과학을 공부한 오늘날의 심리치료사들은 오히려 과거의 기억들을 재구성하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네요.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는 기억의 철학서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철학자는 베르그송인데, 그 이유는 기억의 힘을 감지했던 몇몇 철학자의 시각을 제외하면 19세기말 등장한 철학계의 록 스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에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직관을 발휘했는데 한 세기 후 신경과학이 베르그송의 직관을 사실로 확인해줬어요. 우선 베르그송의 직관이란 기억이 정체되어 있지 않고 역동적이라는 것, 살아 숨쉬며 우리의 의식으로 밀려왔다 밀려갔다 한다는 거예요. "기억은 우리의 의식, 즉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16p)이며, "우리의 과거가 기억 속에 무한히 지속되지만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18p)라면서 객관적 기억은 없고, 모든 기억은 역동적 재구성이라고 설명하네요. 베르그송의 철학은 우리를 구성하는 과거를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열린 자세를 촉구하는 것이며, 과거를 온전히 끌어안고 거기에서 미래로 나아갈 추진력을 얻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요. 여기서 과거를 끌어안는다는 의미는 과거에 얽매이는 태도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누군가는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할 때 감정이 북받치고 눈물이 차오르면서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과거에 있었던 일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함으로써 받아들일 힘이 생긴다고 해요. 이 받아들임이 과거에 개입하는 첫걸음이에요.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일을 느끼고 과거의 아이이자 상속자로서 살아가는 방식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이에요. 때로는 망각이 도움을 주는데, 니체는 망각의 능력은 생충동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어서 의식적 결정이 아닌 생 그 자체가 하는 일이라고 했어요. 베르그송도 우리는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어떤 정보는 의식의 주변으로 밀려나야만 더 유용한 기억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부연했어요. 추억은 사라지지 않고 언제든지 재점화할 수 있지만 괴로운 추억은 새로운 추억으로 희석하고 덮어버릴 수 있다는 거죠.
베르그송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적 재연에 대해 저자는 그 이론의 살아있는 예를 목격했던 일화를 들려주네요. 열 살 아들의 생일을 기념해 축구장에 갔다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두 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발뒤꿈치로 뒤쪽 슛을 날려 골을 넣는 장면을 봤을 때 순수한 베르그송적 몸짓을 봤다고 해요. 단순한 몸짓 하나도 자기가 하는 일에 몰두하는 순간 개인사 전체를 종합할 수 있다는 거예요. 즐라탄의 발뒤꿈치 슛에서 그가 살아온 생이 응축되어 있다고 본 거예요. 창조적 재연 개념은 과거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을 열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식을 의미해요. 우리의 인격 안에서 언제나 자신을 재창조하며 속박에서 벗어나는 생의 힘, "생의 약동"이야말로 과거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자 방법이라는 거예요. 과거를 돌아봐야 우리 자신을 알아가고, 본질에 가까워지며, 세상과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