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 - 최영미 시인이 엮은 명시들
최영미 지음 / 해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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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최영미 시인이 엮은 명시들"이라는 문구가 마치 나를 위해 쓴 편지처럼 느껴졌어요.

어쩐지 아주 오랫동안 그 편지를 기다렸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반가움이 앞서더라고요.

왜 그럴까... 그건 아마도 약해진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주고, 숭숭 뚫린 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아주는 손, 뭔가 그런 보이지 않는 손이 따스하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들어요. 어릴 때는 몰랐던 시의 진면목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라서 최영미 시인이 이끌어주는 손이 고맙고 감사하네요. 최영미 시인은, "위대한 자연을 보면 우리의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이, 좋은 시는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인생의 슬픔을 잠시 내려두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6p) 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아끼던 명시들을 골라 책으로 엮고, 친절한 해설을 덧붙여 주었네요.

《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는 최영미 시인이 엮은 명시 모음집이에요.

이 책은 지난 2년간 <최영미의 어떤 시>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매주 연재하던 글들이 있었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네요.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는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으로 있었는데, 첫 장을 펼친 뒤로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어요. 좋은 시는 사람을 가리지 않더라고요. 이해의 깊이는 다를지언정 감동의 크기는 다르지 않았거든요. 제목이 된 '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라는 문장은 미국의 시인 사라 티즈데일의 <선물 Gifts> 라는 시의 일부분이에요. "나는 내 첫 사랑에게 웃음을 주었고, 두 번째 사랑에게 눈물을 주었고, 세번째 사랑에게는 그 오랜 세월 침묵을 주었지. 내 첫사랑은 내게 노래를 주었지, 두 번째 사랑은 내 눈을 뜨게 했고, 아, 그런데 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 (34p) 사랑을 노래한 시를 읽으면서 각자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게 될 거예요. 시인은 '내 사랑에게 무엇을 준다'라는 문구를 반복함으로써 우리에게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건네주고 있어요. 진짜로 멋진 '선물'인 거죠. 우리는 사랑을 통해 성장하고, 사랑 덕분에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짧은 가을을 보내다 보니, 허영자 시인의 <감>이라는 시가 마음에 와닿았네요.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 누구도 어쩔 수 없다 /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 젊은 날 / 떫고 비리던 내 피도 /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64p) 요즘 단단한 감을 박스에 넣어 며칠 숙성시켰다가 말랑말랑 잘 익은 홍시를 꺼내 먹고 있는데, 잘 익은 감이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입으로 먹느라 바빴는데, 이제는 홍시마냥 잘 익어가는 노력을 해야겠어요. 좋은 시가 주는 감동과 최영미 시인이 들려주는 생각들이 함께 한 가을이라 풍성한 기쁨이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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