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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우리가 '우연'이라고 여겼던 순간들이 어쩌면 '운명'적인 순간이었을지도 몰라요.
외국 영화를 보다가 그 언어에 매력을 느껴서 공부할 수는 있지만 그 언어로 소설을 쓴다는 건 매우 특별한 경우일 거예요.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는 사이토 뎃초의 첫 번째 일본어 책이라고 해요.
앞서 언급한 '특별한 경우'가 바로 저자의 경험담이자 이 책의 내용이기도 해요.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을 읽으면서 유쾌한 에너지를 느꼈어요. 한국어판 출간에 대해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영화와 한국소설, 에세이를 봤을 때의 감동, 충격을 빗대어 기절초풍할 사건이라면서 진심으로 손이 덜덜 떨린다고 해서 어느 정도의 기쁨인지 짐작할 수 있었네요.
원래 책 제목은 "지바에서 거의 나가지 않는 히키코모리인 내가 한 번도 외국에 가보지 않고 루마니아어 소설가가 된 이야기"라는데, 확실히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라는 바뀐 제목이 훨씬 임팩트가 있지만 원제목에서는 사이토 뎃초 작가님의 개성을 엿볼 수 있어요. 그래서 부제로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를 추가한 것 같네요.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라는 단어는 어린 시절부터 내향적이던 저자에겐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였고, 대학 졸업 후 취업 실패로 인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해요. 방에 틀어박히기 이전에도 지바와 도쿄에서 벗어난 적이 없고, 다른 지역에 간 적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0년 이후 코로나가 만연하면서 아르바이트도 날아가고, 2021년부터는 크론병에 시달렸으니 안팎으로 고립되었던 거죠. 그때 마음을 달래준 것이 영화였고 트위터에 감상문을 적다가 비평 쓰는 일을 시작했고, 우연히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감독의 루마니아 영화 <경찰, 형용사>를 보면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뀌는 계기가 되었대요. 루마니아 영화를 더 알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루마니아어를 공부하게 되었고, 고된 가시밭길을 거쳐 루마니어로 소설을 쓰게 되었다니 정말 굉장한 열정과 노력의 소유자인 것 같아요. 학교에서 억지로 배워야 하는 외국어 수업이었다면 절대로 못했을 텐데 저자에게 진정한 어학의 즐거움을 가르쳐 준 인물은 '죠죠'라고 하네요. 유명한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를 좋아해서 전권을 다 읽었는데 등장인물의 이름이 전부 이탈리아어라는 사실을 어딘가에서 주워듣고 이탈리아어 교재를 구입해 보면서 아주 기묘한 세계를 경험했던 것이 이탈리아어에서 스페인어로 새로운 언어에 빠져드는 계기였다네요. 역시 배움의 열정은 즐거워야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아요.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열정, 그 힘이 방구석 너머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열쇠였네요. 사이토 뎃초 작가님의 좌우명은 "좋든 나쁘든 지금 네가 거기 그렇게 있는 게 최대의 강점. - 벅틱" (252p) 이라고 하는데, 진정한 히키코모리를 자처하는 저자의 말이라서 더욱 감동적이네요. 나는 나, 너는 너라서 가장 멋지다는 걸.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1030/pimg_770266113447853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