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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버드의 노래 - 흑인, 퀴어, 우아한 탐조자로 살아온 남자의 조용한 고백
크리스천 쿠퍼 지음, 김숲 옮김 / 동녘 / 2024년 9월
평점 :
당신은 누구인가요, 살면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차별받은 적이 있나요.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있어요. 그래서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가 소중한 거예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수록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어요. 자연의 위대함은 모든 생명들을 똑같이 품어준다는 거예요. 오직 인간만이 인간에게 지독한 적이 아닐까 싶어요.
《블랙버드의 노래》는 크리스천 쿠퍼의 책이에요. 책 표지는 센트럴파크의 풍경인 듯 보이네요. "흑인, 퀴어, 우아한 탐조자로 살아온 남자의 조용한 고백"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네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저자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흑인, 퀴어, 탐조인'이라는 세 단어 중에서 공감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저자의 설명대로 탐조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하나도 없었어요. 우선 어린 시절부터 새의 매력에 빠져서 탐조인으로 살아온 저자의 삶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덕후의 삶이라서 무엇에 열광하고 즐거워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어요. 다만 백인들의 세상 속에서 검은 피부로 살면서 동성애적 성향을 숨겨야 했던 당시 상황들은 어린 소년들에게 무척 힘들고 괴로웠을 거라는 짐작만 할 뿐이에요. 조금 충격으로 다가왔던 건 십대 시절을 '지표 2미터 아래 묻힌 관에 갇힌 기분이었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숨이 막혀가는 그런 느낌. 나는 누군가 나를 꺼내주길 바라며 간절하게 관 뚜껑을 두드렸지만 누구도 내 비명을 듣지 못했다. 그 아래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친구와 가족 모두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내 무덤 위를 걸어 다녔다.' (50-51p)라고 표현한 부분이에요. 그의 성장 과정을 보면 뚜껑이 열리지 않는 관 속에 갇혔다가 벽장 안에 숨었다가 좋은 친구들 덕분에 용기를 얻어서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왔어요. 흡사 저주에 걸린 개구리 왕자처럼 보였어요. 개구리 왕자는 흉칙한 개구리의 모습마저도 사랑하는 공주의 입맞춤으로 저주가 풀렸다면 크리스천 쿠퍼의 저주는 좀 더 복잡한 방식을 거쳐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라 극복해왔다고 볼 수 있어요. 동화가 아닌 현실의 저주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과 괴롭힘이라서 누구 하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저자는 탐조 활동과 마블 히어로를 통해 즐겁게 사는 방법을 찾아냈고, 사회적 편견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웠다는 점에서 대단히 멋지네요. 센트럴파크에서 탐조를 하던 그와 목줄을 하지 않은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던 백인 여성 사이에 일어난 사건은 참으로 아슬아슬했어요. 만약 촬영한 영상이 없었다면 결과는 뒤집혔을 테니까요. 평등과 정의 실현을 원한다면 세상을 향해 크게 외치고 행동해야만 한다는 걸 보여준 사건인 거죠. 블랙버드의 노래 덕분에 아름다운 새들의 매력과 소수자의 인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어요.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1022/pimg_770266113446991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