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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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입다물고 있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어디로 가나요.

육신이 싸늘하게 식어갈 때 제 집을 잃은 영혼이 가야할 곳은 어디일까요.

《소년이 온다》는 한강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먼저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읽기가 쉽지 않다고 하길래 무슨 연유인가 했더니 너무 괴롭고 슬픈 마음 때문이었네요. 이토록 잔인한 학살을 진두지휘했던 독재자는 뻔뻔하게 거짓투성이 회고록을 출간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다가 죽는 날까지 단 한 마디 사과도 참회도 없었으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어요. 한국 현대사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역사적 죄인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했고, 여전히 그를 추종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숨통을 틔워주었네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에서야 소년들이 왔네요. 학살이 오고, 고문이 오고, 강제진압이 오고, 거기에 짓밟히고 쓰러진 소년들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요. 자신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알 길 없는 소년들의 영혼은, 어쩌면 줄곧 그 자리를 맴돌고 있지 않았을까요.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을 철저하게 은폐하고 덮으려 했던 자들은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면 없는 일이 된다고 여겼을 테니 말이에요. 소설 속 인물들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그때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던 실존 인물들이며, 끔찍한 장면들은 독재 정권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의 일부분일 뿐이에요. 활자로 읽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데, 무자비한 총격과 폭행, 고문을 당한 이들은 어떠했을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어요. 우리 군인이라고 여겼던 그들이 쏜 총에 맞을 때까지, 우리를 보호해주는 국가라고 여겼던 그들이 고문할 때까지, 설마 아닐 거라고,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믿었던 무고한 시민들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응어리진 마음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침묵해야 했던 세월을 지나 이제 그 목소리를 듣게 되었네요. 소설이 아니라면 닿을 수 없는 혼과 마음의 목소리였네요. 독재의 잔재들을 완전히 뿌리뽑아내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다시 벌어질 비극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해요. 다행스럽고 기쁜 소식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는 거예요.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지만 사람은 바뀔 수 있어요.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하는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이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58-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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