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에 관하여
요한 G. 치머만 지음, 이민정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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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란 지적인 상태다.

고독 안에서 우리의 정신은 스스로의 모습을 마주하고 이를 받아들인다.

'고독'이라는 말은 세상과 그에 따른 모든 관심사로부터 철저히 도피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피난처라고 하겠다."

(6p)


현대인들에게 고독이란 대개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홀로 동떨어진 루저의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고, 자신의 모든 일상을 타인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세상에서 고립과 단절을 경험하기가 두려워서일 수도 있어요. 외로움은 사회와 타인으로부터 거절된 소외감이라면 고독은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인 자기격리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어요. 그 차이를 이해한다면 우리에겐 고독의 진정한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해요. 바로 그 내용을 담은 책이 나왔어요.

《고독에 관하여》는 요한 G. 치어만의 책이에요. 저자는 18세기 후반 유럽을 대표하는 의사이자 사상가인데 사상가로 더 알려진 이유는 《고독에 관하여》라는 저서 덕분이라고 하네요. 원래 이 책은 총 네 권으로 그중 첫 두 권은 1784년에, 나머지 두 권은 1786년에 발간되었다고 해요. 인간의 정신이 지닌 힘의 파급력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여겼던 요한 치머만은 그 정신력을 단련하는 방법으로 '일시적 은둔', 즉 고독을 권하고 있어요. 의사로서 신체의 여러 가지 병이나 장애의 감춰진 원인을 탐구하고 그 성질을 연구하면서 고독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을 가장 잘 습득할 수 있는 배움의 장이라는 걸 몸소 체험했기에 고독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된 거예요. 고독은 우리가 생각하도록 이끌고, 생각은 인간 행동의 주된 원천이라서 정신이 월등한 사람들이라면 고독을 통해 생각이 고취되고 선과 공익에 관한 일을 실행할 수 있다는 거죠. 저자는 저명한 인물들이 언급했던 고독 예찬을 소개하면서 고독이 정신과 마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과 은둔의 일반적 이점 그리고 노년과 임종 시 고독의 이점을 설명해주고 있어요.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이 페트라르카인데, 그는 방대한 독서량과 고전문헌 복원작업으로 중세와 근대를 연결하는 과도기적 인물이자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탈리아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라틴어 학자라고 하네요. 세속의 온갖 유희들보다 혼자 즐기는 여가와 자유로운 시간을 선호했던 페트라르카는 벗들 중 한 명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해요. "나는 내 신체적 힘이 적이란 걸 알기에 그와 전쟁을 벌이고 있네. 수많은 어리석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한 내 두 눈은 이제 햇볕에 그을린 한 늙은 흑인 여인에게로 향한다네. (···) 종일 들판에 있는 그녀의 주름진 피부는 뜨거운 햇살을 견뎌내지. 옷장에는 아직 좋은 옷들이 가득하지만, 난 그 옷들을 입지 않는다네. 아마 자네가 나를 본다면 흔한 노동자나 순박한 양치기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 예전엔 내가 걸치는 옷에 너무도 연연했지만, 당시엔 그랬어야 했던 이유가 이젠 사라지고 없다네. 나를 사로잡고 있던 족쇄가 끊어져 버린 거지. 한때 내가 잘 보이려 했던 시선들은 이제 닫히고 없다네. 만일 그 시선들이 아직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내 마음을 짓누를 수 없을 걸세." (158-159p) 화려한 삶의 헛된 기쁨을 포기하는 대신 페트라르카는 소박한 전원 생활에서 고독을 즐기는 현자가 된 거예요. 저자는 철학자, 현자들의 사례를 통해 고독의 이점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역시 홀로 살아가는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그가 들려주는 고독의 미학, 고독 예찬론은 단단한 삶의 지혜와 맞닿아 있어요. 영혼이 가장 순수하고도 정제된 기쁨을 맛보고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고독을 마다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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