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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ㅣ 서사원 영미 소설
패트리샤 박 지음, 신혜연 옮김 / 서사원 / 2024년 9월
평점 :
《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은 한국계 미국인 패트리샤 박의 하이퍼리얼리즘 성장소설이에요.
저자는 뉴욕 퀸스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현재 브루클린에 살고 있고, 아메리칸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가르치고 있어요. 창의 예술 분야 풀브라이트 장학생, 제롬 힐 아티스트 펠로우십에 선정된 한국계 미국인 작가이며, 호평받는 소설 《리 제인》의 저자이기도 해요. 이번 작품에서는 한국인 이민자로서 학교와 직장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느낌을 받았던 본인의 경험을 녹여냈다고 하네요. 진짜 솔직한 고백이라고 느꼈어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는, 아주 미묘한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알레한드라 김 Alejandra Kim 이예요. 첫 장부터 이름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네요. 매번 학기초마다 선생님들은 출석부에 잘못 적힌 글자라도 발견한 것처럼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한 적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동양인의 외모를 가진 여학생이 이름은 스페인에서 흔한 사용할 법한 이름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부모님은 아르헨티나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라서, 알렉한드라 김은 한국-아르헨티나계 미국인이 된 거예요. 이름은 하나인데 퀸스 동네 사람들은 "에일", 엄마가 엄청 화가 났을 때는 "알레한드라 베로니카 김", 아빠는 늘 "알레하-야", 그리고 학교 친구들은 "앨리"라고 부른대요. 본래 이름도 정확하게 불러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름과 얼굴, 인종, 민족 뒤에 숨겨진 이야기까지 들려줘야 한다는 건 너무 짜증나고 진이 빠지는 일이에요. 앨리는 현재 학비의 90퍼센트를 지원받으며 부유한 백인 고등학교 퀘이커 오츠에 다니고 있지만 나머지 10퍼센트 학비가 부모님에게 큰 부담이 됐어요. 아빠는 앨리에게, "꿈을 크게 가지렴, 알레하-야. 이 나라에서는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될 수 있어." (50p)라며 활짝 웃으며 말했는데, 정작 아빠는 아메리칸 드림을 포기하는 것도 모자랐는지, 가장 소중한 것마저도 놓아버렸어요. 그 일을 겪은 뒤라서 앨리는 창의적 글쓰기 강사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넘겼어요. 왜냐하면 퀘이커 오츠에 입학할 때 아빠는, "넌 이 학교에서 손님 같은 존재야.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말아라." (75p)라고 말했고, 앨리는 조용히 지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에요. 근데 불의를 참지 못하는 친구 로럴이 그 사실을 전해듣고 가만 두면 안 된다면서 일을 키우고 말았어요. 로럴의 행동은 곤란에 처한 친구를 도우려는 선의에서 시작되었지만, 제 3자의 눈으로 볼 때는 선의만 앞세운 경솔한 이타주의적 폭력이었어요. 학교 총회에서 훌륭한 일을 해낸 로럴은 전교생의 박수를 받았고, 앨리는 문화적 무감각의 피해자가 되어 우스꽝스러운 상을 받았으니까요. 로럴은 앨리가 처한 어려움이 겉으로 드러난 인종차별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몰랐고, 자신이 나서는 것이 옳다고 믿었을 거예요. 그래서 앨리는 아무 말도 못한 채 혼자 고통을 감내해야 했어요.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어요. 어릴 때 낯선 지역에 놀러갔다가 조금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나만 빼고 모두가 다른 말투로 이야기하는 환경이 너무 낯설었거든요. 속으로 저 말투를 따라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입을 꾹 다물었네요. 갑자기 세상이 바뀐 느낌이랄까요. 이방인, 아니 외계인이 된 것 같았어요. 겨우 말투만 달라졌을 뿐인데, 그들과 나를 가르는 경계가 생기고, 완전히 다른 세상에 홀로 뚝 떨어진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결코 앨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소소한 경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앨리가 겪고 있는 상황들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졌네요.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 여성,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과 고통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가면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했던 앨리, 그 가면은 잘못된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지 본인의 잘못이 아니에요. 이럴 때 외치고 싶은 말은, 껍데기는 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