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평점 :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은 야기사와 사토시 작가님의 소설이에요.
좋은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좋다는 사실을 이 작품이 증명하고 있네요. 헌책방 '모리사키 서점'에서 발견한 빛나는 보물이네요.
저자는 2009년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로 데뷔하였고, 2010년 해당 원고를 단행본 출간했는데 동명의 영화가 같은 해에 극장 개봉되어 인기를 누렸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고요. 그렇게 13년이 흘러 먼지 속에 묻혀 있던 그 책이 2023년 7월, 미국과 영국에서 번역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24년 3월에는 '올해의 영국 도서상'의 소설 데뷔작 부문 최종후보에 이름을 올리면서 전세계 30개국에 번역 출간되고 있다니 놀라워요. 바로 그 작품을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으로 새롭게 펴낸 거예요.
헌책방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오래 전에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거닐던 시절이 떠올랐어요. 책장에 들어가지 못해 바닥에 잔뜩 쌓여 있던 책탑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나만의 보물 찾기를 했더랬죠. 새책을 더 좋아하지만 헌책의 매력을 무시할 순 없는 것 같아요.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고르던 시절의 추억이 이 소설 덕분에 소환이 됐네요.
주인공 다카코는 스물다섯 살의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내 비밀연애를 했던 그놈, 나쁜 X 의 배신으로 큰 충격을 받고 퇴사했어요. 에휴, 이 부분에서 대신 울화통이 터졌네요. 엄청난 복수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식으로든 혼내줬어야 하는데, 다카코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혼자 끙끙 앓다가 회사를 그만 둔 뒤 한 달 가량 집에 콕 박혀서 잠만 잤어요. 그러던 어느 날 사토루 외삼촌에게 전화가 왔어요. 증조할아버지가 열었던 진보초의 '모리사키 서점'을 이어받아 운영 중인 삼촌은 다카코가 일을 그만뒀으니 당분간 어디 취직할 생각이 없다면 서점에 와 있으라고 한 거예요. 이 제안을 거절하면 꼼짝없이 고향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다카코는 외삼촌 쪽을 선택했어요. 오래된 헌책방에서 보내게 된 다카코의 일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살며시 마음을 토닥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먼지 쌓여 있고 곰팡내나는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이 소설을 읽고나면 "비가 그친 아침처럼 촉촉하다." (25p)라고 했던 사토루 삼촌의 말이 생각날 거예요. 아무래도 반했나봐요.
"그래, 여기야. 우리의 작고 허름한 모리사키 서점. 큰뜻을 품고 세계로 뛰쳐나갔는데 결국 도달한 곳이 내가 어린 시절부터 익히 알았던 장소라니. 웃기지? 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서 이곳으로 돌아온 거야. 장소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었어.
그래, 그건 마음의 문제야.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자신의 마음에 진솔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내가 있을 장소야. 그걸 깨닫는 동안 내 인생의 전반부가 지나갔다고 해야겠지. 그리고 나는 이제 가장 마음에 드는 항구로 돌아와 여기에 닻을 내리기로 결정한 거야. 나에게 이곳은 신성한 곳이고 가장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야."
(88-89p)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