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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의 반란
방주 지음 / 큰집 / 2024년 9월
평점 :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황홀해하는 사람.
누가 봐도 빼어난 외모를 가졌다면 만족감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정말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다는 게 가능한 걸까요.
안타깝게도 이번 생에서는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지만 소설을 통해 일반적인 자기애를 뛰어넘어 육체적인 사랑까지 원하는 한 남자를 만났네요.
《나르시스의 반란》은 방주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주인공 최유진은 언제인지도 기억 못할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운 자기 자신에게 반했고, 거울 속 아름다운 자신과 직접 사랑을 나눌 수 없음에 절망하며 여러 개의 거울을 깨부쉈어요. 그러다 열다섯 살에 자신의 사랑을 이룰 방법을 생각해냈고 중대한 결심을 했어요.
'나 자신과 사랑에 빠졌다면, 나 자신을 하나 더 만들면 되지 않는가?'
물론 유전자가 같다고 완전히 자신은 아니겠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어찌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단 말인가?
자신과 같은 유전자를 가졌다면 틀림없이 나 이외에는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10p)
약간 소름돋는 장면이에요. 잘못 낀 첫 단추, 이미 그 끝이 보였으니까요. 아름다운 외모뿐 아니라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유진이었기에 그 결심은 망상에 그치지 않고 복제인간 프로젝트로 진행되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어요. 유진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과 집착의 광기를 보여주고 있어요. 처음부터 유진은 엄청난 착각에 빠져 있었고,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결정적 한 가지가 부족했어요.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거울을 보다가 문득 '나는 나를 거울 없이는 바라볼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진짜 자아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고뇌를 이상의 시 <거울>에서 발견했던 기억이 나네요.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ㅡ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께요 /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 또꽤닮았소 /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유진은 왜 거울 속 자신을 사랑했을까요. 아름다우니까, 근데 그 아름다움은 한낱 허상임을 몰랐던 거예요. 허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이 강렬할수록 더 심한 갈증에 시달리며, 끝내 충족감을 얻지 못한 채 파멸에 이르게 돼요. 애초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니까요. 진실한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아름답고도 어리석은 한 남자의 이야기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