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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불평등한 세계에 살고 있다 - 기울어진 세계에서 생존하는 법
미셸 미정 김 지음, 허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24년 8월
평점 :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것이 차별과 혐오, 폭력이었다면...
《우리는 모두 불평등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미셸 미정 김의 책이에요.
저자의 이름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 일부분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 수 없어요.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국인의 삶, 반대로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한국인의 삶에는 필터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진짜 현실과는 다를 수 있어요.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필터를 뺀, 노골적인 형태든 미묘한 형태든 불공평의 경험들을 낱낱이 밝히면서 동시에 자신과 같은 투쟁을 해온 이들과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어요. 불평등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투쟁도 따로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 연결하고, 운명적 상호 연결성을 깨닫고, 곁에 있는 서로를 공격하는 대신 집단의 힘을 키워야 불평등한 시스템과 그것을 유지하는 자들에게 어퍼컷을 날릴 수 있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제가 간과했던 건 '곁에 있는 서로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 즉 수평적 폭력은 체계적 억압의 흔한 증후 중 하나라고 하네요. 불평등한 조건에 대한 분노와 비난의 화살을 억압자가 아닌 다른 억압받는 집단으로 돌리는 것으로, 같은 처지임에도 함께 투쟁하는 대신 작은 부스러기를 두고 서로 싸우는 것을 의미해요. 소수 특권층이 권력과 자원의 대부분을 장악하면서 자원을 한정하여 수평적 폭력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현상 유지를 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고 하네요. 수평적 폭력은 역사적으로도 오늘날에도 다양한 투쟁 전선에서 포착되는 고약한 종기 같아요. 저자는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모여 연대를 추구하다가 서로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같은 악을 비난하면 한 팀이 될 것이라 믿지만 실제로는 왜 그런 느낌이 안 드는지, 단순히 부정의를 비난하는 것으로는 연결성이 부족한 이유를 찾게 되었다고 해요. 다양한 사회 부정의에 대해 경멸을 공유하는 집단들이 모이더라도 서로 미묘하지만 확연하게 어긋나게 되는 이유는 서로 다른 신념과 생존을 위한 대응 방식이 충돌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공통의 원칙이 필요한 거예요.
이 책은 우리 자신이 변하지 않고서는, 또 우리가 서로 맺는 관계를 먼저 바꾸지 않고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왜곡 없이 연결하고 희석 없이 이해하는 태도와 사회정의를 위한 연대 방식을 제안하고 있어요. 저자는 자신을 퀴어이고, 한국계 미국인, 이민자, 비장애인, 계급적 특권 및 교육의 특권을 가진 시스젠더 여성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시스템의 억압과 차별, 불평등과 불공정이 사라지지 않는 세계를 그냥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직접 나섰고, 자신의 투쟁이 결국은 우리 모두의 투쟁과 연결되어야 기울어진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외치게 된 거예요. 저자는 너무도 많은 흑인, 유색인, 원주민, 아시아인, 라틴, 여성, 펨, 퀴어, 트렌스젠더, 논바이너리, 빈곤층, 장애인 그리고 여러 가지 교차하는 주변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이는 시스템과 문화가 백인우월주의라는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 이들을 비인간화하고 강탈하고 착취하고 무시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네요. 중요한 건 주변화된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며 우리 모두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함께 당당하게 맞서는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