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자들
고은지 지음, 장한라 옮김 / 엘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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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 전이네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가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을 때 무척 놀랐어요. 미국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우리 역사의 단면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거든요. 그 전에 쿠바 한인2세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를 제작하며 감독이 된 전후석 미국변호사를 알게 되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디아스포라(Diaspora)는 흩어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본래 팔레스타인 지방을 떠나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인데, 점차 그 의미가 확대되어서 특정 민족이 자신들이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정체성을 지키며 사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어요. 우리나라의 디아스포라 역사는 조선 말기로 거슬러 갈 수 있는데 먹고 살기 힘들어서 생존을 위해 떠난 사람들이 많았고, 일제강점기부터는 생존뿐만이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떠난 사람들, 징용, 징병, 일본군 위안부 등으로 끌려갔다가 광복 이후 그대로 그 지역에 머물게 된 사람들도 있어요. 광복 이후에는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이주 확대 정책이 시행되면서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많이 이주했어요. 2023년 현재 730만 명 이상의 재외동포가 전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하네요. 과거 한국의 세계적 영향력이 크지 않던 시절에 재외 한인들은 고향에서도 정착지에서도 소수자였고 어느 쪽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채 지역사회 내 벌어지는 폭력에 직접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드라마 <파친코>에서도 주인공 선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험난한 삶을 살아가는 과거의 모습과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재일교포 3세 솔로몬의 현재 삶을 교차하며 보여주고 있는데, 바로 이 드라마에 작가진으로 참여했던 고은지 작가님의 소설이 나왔어요.

《해방자들》은 한국계 미국인 고은지 작가님의 첫 소설이자, 2024년 젊은사자상 소설 부문 수상작이라고 하네요.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가 끝날 무렵 어린아이였던 요한의 삶으로 시작하여 1980년 비상계엄령, 군부 독재 시기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된 한인 교포 가족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어요. 이민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재외동포로서의 삶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최근 한국 문화, 한류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국인 이민자들의 정체성을 담아낸 코리안 디아스포라 콘텐츠들도 크게 주목받고 있어요. 이 소설 역시 한 가족의 서사를 통해 시대적 아픔과 절망,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마지막 장면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를 텔레비전으로 보는 인숙의 가족들이 나오는데,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성호는 "가라앉는 배에 타고 있을 때는 아무도 믿으면 안 돼. 다른 사람 말은 절대 듣지 마." 라고 말했고, 인숙은 놀란 제니를 꽉 끌어안았으며, 헨리는 굳은 표정으로 위층 방으로 가버렸어요. 인숙은 제니에게 이렇게 말해줬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희망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거나 실망해서는 안 된다고. 태양은 잔해와 물 위는 물론이고 세상 모든 이와 모든 곳에 여전히 빛을 비춰주기 때문에." (264p) 마음 깊은 곳에서 희망을 끌어올려야 할 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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