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백설자 옮김 / 현암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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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빵집과 52장의 카드》는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설이에요.

열두 살 소년 한스 토마스가 아버지와 함께 엄마를 찾아 나서는 여행 이야기지만 매우 환상적인 모험기이기도 해요.

스페이드, 클럽, 조커, 다이아몬드, 하트 순으로 진행되는데, 카드에 지닌 의미들이 수수께끼처럼 느껴지네요. 한스는 작은 남자로부터 아주 작은 돋보기를 받았고, 제빵사 노인이 준 롤빵 안에서는 성냥갑 크기의 작은 책을 발견했어요. 육안으로는 도저히 보기 어려운 꼬마책 표지에는 "무지갯빛 레모네이드와 마법의 섬"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고, 작은 돋보기를 통해 그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아버지와 여행 중인 한스의 현실과 꼬마책 속의 환상 세계가 교차되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네요.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더니 열두 살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어요. 근데 이상하게도 한스는 열두 살보다 훨씬 더 어른처럼 느껴지고, 아버지는 나이든 몸에 갇혀 있는 어린애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세상의 온갖 지식에 관해 들려주는 아버지에게 한스가 던지는 질문은 심오하고 철학적이네요. 한스의 짐작대로 꼬마책이 모든 의문에 대답해주는 신탁인지도 모르겠네요. 중요한 건 한스 덕분에 질문하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는 거예요. 철학적 질문과 사유로 가득차 있는 신비로운 세계 속을 여행한 기분이네요.




"저 많은 사람 중에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이 세계를 언제나 동화나 수수께끼같이 새롭게 체험한다면······."

아버지는 숨을 들이 쉬더니 말을 계속했다. "저 아래 수없이 많은 사람이 보이지, 한스 토마스야? 내 말은,

저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인생을 열광적인 모험으로 체험한다면······. 남자든 여자든 날마다

그렇게 체험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요?" 아버지가 또 말을 중간에서 멈춰버렸기 때문에 내가 물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카드 한 벌 속의 조커인 셈이지."

"아버지 생각엔 여기에 그런 조커가 있다는 건가요?"

아버지는 어깨를 움츠려 보았다.

"아니지! 물론 확신할 수는 없지. 조커가 매번 몇 장 있기는 하지만 그게 나올 확률은 아주 낮으니까."

"그럼 아버지는 어떤데요? 아버지는 인생을 날마다 동화처럼 체험하는 거예요?"

"물론이지!"

하지만 아버지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침마다 나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깨어난단다. 그건 내가 동화 속에서 펄펄 살아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새롭게 주입시켜주는 것 같단다. 한스 토마스야, 우리는 누구일까? 대답해줄 수 있겠니?

우리는 별에서 떨어져 나온 한 사람분의 우주 먼지로 조립되었거든. 하지만 이건 무엇일까? 어디서, 제기랄,

이 세계는 온 것일까?"

"모르겠어요." 순간 나는 소크라테스가 그랬듯이 완전히 제외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이면 때때로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나는 이 순간에 살아 있는 인간이구나.

그리고 나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곤 한단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힘든 삶이라······. 그래, 하지만 엄청나게 흥미진진하지. 난 유령을 쫓아가기 위해 서늘한 성곽에 갈 필요가 없단다.

내가 바로 유령인걸."

"그런데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선실 창밖에서 유령을 봤다고 걱정하는군요."

아버지는 그냥 웃었을 뿐이다.

"넌 견뎌낼 수 있을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얘기한 델포이 신탁 이야기는 옛 그리스인들이 이 사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 넣었다는 사실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

"하지만 그건 말하긴 쉬워도 행하긴 어려운 법이지." 아버지는 혼잣말하듯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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