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추억의 힘 - 탁현민 산문집 2013~2023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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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가리키는 나침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여윈 바늘

끝을 떨고 있습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우리는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나침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신영복, <지남철>


첫 장에 적혀 있는 이 글을 읽고서 잠시 생각에 잠겼네요.

가슴 떨리는 무언가가 없다면 과연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소한 추억의 힘》은 공연연출가 탁현민의 삶을 스쳐 간 사람들과 그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저자가 올해 기획했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저한테는 공연과 함께 추억의 한 장면으로 기억되겠지요.

이 책은 2013년부터 2023년까지의 기억과 추억, 여러 회고가 담겨 있는데, 두 권의 책을 합본하고 지난 1년 동안 회고한 글들을 추가했다고 하네요. 원고를 합본하다가 저자가 깨달은 것은 "절망과 위로, 그 모든 순간에 그것이 극단으로 치닫게 하지 않는 장치가 있는데, 바로 성찰과 웃음이었다. 실패를 복기하는 과정은 괴롭지만, 과정의 성찰은 곧 위로였다. 또한 괴롭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은 가장 뛰어난 탈출 버튼이었다. 모든 위로의 순간에는 반드시 성찰과 웃음 포인트가 함께 있었다." (9p) 라는 거예요. 요즘 시기에 더욱 공감되는 깨달음이네요.

앞서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강한 울림을 느꼈는데, 신영복 선생님과의 인연과 임종의 순간을 읽으면서는 좀 울컥했네요. "울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다음에 또 만나면 되지." (49p)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승, 마지막 순간에도 울고 있는 제자를 다독이며 맑게 웃으셨군요.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늘 책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았던 터라 그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아요. 저자는 "요즘은 부쩍 선생님 생각이 난다. 아마도 다시 막막하고 막연해진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런 기분이 들 때면 괜히 혼자 있고 싶어진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럴수록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나아져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요즘에야 그 말씀이 이해가 간다. 세상에 혼자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혼자서 극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애초에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삶의 문제 대부분은 서로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고 관계를 통해서만 풀릴 수 있다.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아간다. 가르치고 배우는 연쇄 속에서 자기 자신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53p)라고 했는데, 저자의 추억 덕분에 덩달아 좋은 말씀을 되새길 수 있었네요. 사소한 것들이 무시당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 사소함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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