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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과 한국의 사회민주주의
이만열 외 지음 / 해냄 / 2024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몽양 여운형, 죽산 조봉암에 이어 한국 진보정치사의 맥을 이은 혁신계의 대표적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당산(堂山) 김철. 그는 민족주의자로서 주권의 신장과 통일운동에 앞장섰고, 민주주의자로서 독재 권력의 억압에 항거했으며, 사회주의자로서 노동자들의 권익 옹호와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동시에 세계인으로서 다양한 국제적 연대 활동을 통해 국내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위상을 높였다." _ 책 앞날개
《김철과 한국의 사회민주주의》는 "현대 한국의 진보적 정치운동의 역사적 유산"으로 평가받는 당산의 사상과 그의 생애를 다룬 책이에요.
당산 김철 선생은 1926년 함경북도 경흥 출생으로, 1957년 정치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민주혁신당 창당과 함께 활동하였고, 군사독재 시절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한국의 사회민주주의를 이끌었던 인물이며, 1994년 8월 11일 68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쳤어요. 올해로 김철 선생의 서거 30주년을 맞아 그동안 당산 선생에 대한 다각적인 평가를 담은 글들을 한데 모아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하네요.
우리가 몰랐던 한국 사회민주주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요즘 세대들에겐 이념, 색깔 논쟁이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왜 자꾸 선거 시기마다 이념, 색깔을 떠드는 걸까요.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냉전의 형태는 국가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90년대 전후로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는데 한국에는 이념과 사상을 민족에 우선했던 국가보안법(국보법)이라는 악법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비판하고 의견을 표현하는 민주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할 수 있는 법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것이 한국 사회의 불행이네요. 요근래 이승만을 추앙하는 영화가 나오면서 역사 왜곡을 하고 있는데 그는 6·25 전쟁이 나자 서울 사수를 방송해 놓고 자신은 수원으로 도망가면서 한강다리를 폭파시켰고, 국보법을 만들어 좌익, 빨갱이로 지목되는 동포는 누구든 집단학살을 자행토록 군경을 독려하며,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공존 또는 통합하자는 정책을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 없고, 4·19혁명으로 쫓겨나기 직전까지 무력에 의한 북진통일을 외쳤어요. 김철 선생의 민족 통일론은 남북의 실체 인정을 기초로 평화공존과 화해 일치를 모색하는 평화통일인데, 적대 의식이 팽배했던 시기에 평화라는 단어는 불화를 조성하는 빌미로 간주되었어요. 김철 선생은 자신의 사상을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이 용어는 자신이 분명히 반대하고 있는 공산주의를 '독재적 사회주의' 혹은 '전제적 사회주의'라고 규정함으로써 그 차이를 분명히 했어요. "공산주의는 민주주의를 한다고 표방하면서도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부정하지만, 사회주의는 이런 독재정치를 반대하고 정권이 교체되는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한다. 사회주의운동이 활발해지려면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하면서 민주화야말로 사회주의운동의 선결 과제라고 주장했어요. 유신체제에 의한 민주 세력과 통일운동 세력 탄압이 노골화되면서 이후 김철의 통일운동은 민주화 운동과 깊숙하게 연결되는 과정을 밟게 되었어요. 1970년 통일사회당 대통령후보였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남북 정상 간의 대화를 주장했어요. 홍을표 교수는 김철의 한반도 통일관 연구를 통해 현재 조건에서 사회민주주의적인 통일관보다 더 나은 것을 찾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어요. 김철 선생을 포함한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들이 실패한 것은 역대 독재정권의 탄압 때문이에요. 정치사찰, 계엄령, 정변, 긴급조치법, 정보정치 등으로 민주적 사회주의가 싹을 잘라버렸기에 국민 일반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했던 거예요. 유권자층이 민주적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고 지지할 만한 토대를 쌓을 수 없었던 거죠.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을 찬양하는 이들이 왜 사회주의를 공산주의로 엮었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에요. 윤대통령은 "이승만이 놓은 레일 위에 박정희의 기관차가 달렸다는 말처럼 두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이 오늘의 번영을 이룬 토대가 됐다"라며 상공의 날 기념사를 했어요. 또한 올해 8·15 경축사에서는 "사회 내부에 암약하는 반국가세력"을 언급했어요. 누가 반국가세력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간첩활동을 하거나 국가기밀을 적국에 유출하거나 북한정권을 추종하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답했는데, 되묻고 싶어요. 일본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독도라는 한국 영토를 일본의 손에 넘기려 하며, 김일성이 내놓은 3대 혁명 역량 강화론, 흡수통일론을 그대로 베낀 통일 독트린은 뭐냐고요. 박노해 시인은 "사람은 사람을 알아봐야 한다. 누구와 선을 긋나. 누구와 손을 잡나. 이로부터 모든 게 달라진다." 라고 했어요. 당대에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던 당산 김철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우리가 꼭 톺아보아야 하는 이유는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와 맞물려 있네요. 한국의 사회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