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만나자
심필 지음 / 서랍의날씨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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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첫 장면에 할 말을 잃었네요.

주인공 '나'는 관에 갇혔고, 나를 가둔 자는 땅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더니 선물이라며 빈 총과 총알을 툭 던졌어요. 빠르게 장전을 시도했으나 그들은 더 빠른 속도로 관뚜껑을 덮더니 흙을 뿌렸어요. 꼼짝없이 산 채로 관 속에 갇혀버린 나는 미친 듯이 꿈틀대며 발버둥을 쳤으나 소용없었어요. 손에 잡히는 총,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고 절망에 빠진 나는 권총을 굳게 부둥켜 쥐고는 남은 시간 동안 과거를 돌아보기로 했어요.

"어떤 고민도, 선택도 필요 없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말이다.

그리고 끝없이 늘어선 과거의 기억들 중 내가 고른 것은 12월 29일. 나는 12월 29일부터 삶을 되감기로 결정하였다.

거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11p)

《어제 만나자》는 심필 작가님의 데뷔작이라고 하네요. 제목을 보자마자 '어제'라는 과거 시점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첫 장면에서 바로 알려주네요. 책 표지의 네모난 프레임은 핸드폰 액정이 아니라 관 테두리였네요. 생사람을 관에 넣어 흙으도 덮어버렸으니 남은 건 죽음 뿐일 거예요. 주인공 '나'는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빠져드는데, 소설은 그가 말했던 12월 29일부터 12월 31일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어요. 쉰 살의 강동수, 현재의 모습뿐 아니라 그동안 살아온 여정을 보면 루저인데 그가 주인공이라는 것이 몹시 불편하고 불쾌할 수 있어요. 근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삶은 막다른 골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변변찮은 동네 양아치, 깡패, 백수... 아무리 가정 형편이 어렵고 힘들어도 반듯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럴까요. 분명 스스로 선택할 기회는 있었지만 그러기엔 삶이 너무나 팍팍했다고, 어쩐지 동수의 비루한 삶이 전적으로 그의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쁜 놈 위에 더 나쁜 놈, 최고로 악질적인 놈들에게 걸리면 거미줄에 걸린 곤충마냥 벗어날 길이 없다는 걸,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겠어요. 동수라는 인간은 싫지만 그를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동수의 사랑하는 가족이자 유일한 혈육인 동생 강호, 솔직하게 강호의 입장을 들을 수 있다면 그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강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행동으로 모든 걸 보여주고 있어요. 어떤 마음을 지녔는지,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행동에서 다 드러난다는 걸,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행동을 통해 확인하게 되네요. 새삼 수없이 쏟아내는 말들이 얼마나 부질없고 헛된 것인지를 느꼈어요. 죽음을 앞둔 시점이라면 무슨 말을 하게 될까요. 마지막이라면... 동수가 들려주는 '어제'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가슴을 콕콕 찌르는 가시 같았어요.



"오늘이 마지막이잖아."

"응. 마지막이야."

"우리말이야, 우리 이 일은 왜 시작하게 된 거야?"

비어 버린 줄 알았던 동호가 묵직한 질문을 찌르고 들어왔다.

말이 없어진 것은 동수 쪽이었다.

왜 시작하게 되었을까? 머리에 떠오른 것은 마혁수, 지역의 폭력집단 광장파의 우두머리 마장식의 하나 뿐인 아들이 벌인 일이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모든 불행의 인과관계가 그러하듯, 이면에는 많은 원인이 뿌리깊게 얽혀 있었다. (35p)


"내가 왜 너에게 돈을 줘야 하지? 넌 일회용품이야.

쓰고 나면 버려야지. 쓰레기처럼." (2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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