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아가씨
허태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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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이 처벌받지 않는 것에 분노한 적이 있다면, 다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은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블 영화의 히어로는 멋있지만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한데, 호랑이 영혼을 가진 히어로는 왠지 그럴싸하게 느껴지네요. 아무래도 무속 신앙과 환생이 우리에겐 익숙한 정서라서 그런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답답한 현실을 뻥 뚫어줄 수 있는 히어로의 존재를 소설 속에서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호랑이 아가씨》는 허태연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주인공 태경은 3년 간 경찰 시험을 준비했지만 이번에도 또 떨어졌어요. 평소라면 낙담해서 방에 콕 박혀 울고 있었을 텐데 이번엔 달랐어요. 생고기를 뜯어 먹었더니 금세 행복해졌거든요. 달라진 건 식성만이 아니라 몸의 변화였어요. 왼손 검지에 황갈색 털이 나고, 손톱이 긴 갈고리 형태가 된 거예요. 너무 놀라서 엄마와 함께 무당을 찾아갔더니 300년 전 산왕산을 다스렸던 호랑이 산신령의 영혼이 깨어났다는 거예요. 무당이 내려준 처방은 귀를 열고 마음을 비우고 얘기를 들어주면서 일백 명 마음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태경은 경찰서 앞에 점집을 차리게 되는데, 간판에는 '액운타파 사주112'라고 적혀 있어요.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그들의 한을 풀어줘야 하는 태경,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요. 억울함으로 인한 분노를 느낄 때마다 호랑이로 변신한다는데 스스로 통제가 어렵다는 거예요. 결국 분노 조절을 못하는 바람에 엄청난 사고를 저지르게 되는데 이러다가 꼼짝없이 들킬 텐데... 조마조마하면서도 한편으론 통쾌해지는 호랑이 아가씨의 활약을 보면서 우리의 현실을 떠올렸어요. 소설에서도 여러 사건들을 통해 우리들의 양심을 콕콕 찌르는 부분이 있었는데 아마 대부분 공감할 것 같아요. 우리는 누군가 나서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굳이 자신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여길 때가 있는데, 정신 분석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방관자 효과라고 한대요. 방관하고 침묵한다면 그릇된 행동이 일상화될 것이고, 다음 피해자는 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호랑이 아가씨가 우리의 양심을 일깨워주네요. 어쩌면 우리 내면에도 호랑이 영혼보다 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는 걸, 그게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 아닐까 싶네요.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멋진 작품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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