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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프라이 자판기를 찾아서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4년 7월
평점 :
새벽 두 시 이십 분, 양은청이 쭈뼛쭈뻣 빈소로 들어왔다.
스무 살의 여름 이후 13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어, 김지하 감독님이네."
나는 양은청의 얼굴을 보고도 못 본 척 고개를 숙여 다시 트위터를 열어버렸으니,
나보단 양은청이 백배 천배 나은 애인 것도 역시 변함없었다. (17p)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과의 서먹한 분위기, 소설의 첫 장면이에요. 나이들수록 싫지만 마주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잖아요. 그런 상황들은 재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겼는데 아닌가봐요. 매듭짓지 않은 실타래가 계속 풀리듯이...
《계란 프라이 자판기를 찾아서》는 설재인 작가님의 소설이에요. 이 소설은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해 과거로 돌아가 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인 지나, 지택, 은청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계란 프라이 자판기를 봤다는 친구의 말 때문에 세 아이는 계란 프라이 자판기를 찾아 나서는 영상을 찍게 되고 십여 년이 지나 발표된 이 영상은 굉장한 호평을 받으면서 의외의 사건으로 이어지네요.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요. 그냥 그때는 어렸으니까, 어리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열두 살은 사회적 기준에선 아직 어린애일뿐이지만 각자의 열두 살을 떠올려보면 어리기만 한 건 아니었음을 알고 있으니까요. 감추고 싶은 열등감, 질투, 시기심 그리고 죄의식까지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지만 이 소설 안에서는 너무도 투명하게 잘 보이네요. 그 마음은 특별한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도 존재하고 있어서 잘 알고 있어요.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근데 들춰내고 싶지 않은 과거의 나, 그 모습을 세 아이를 통해서 보고 말았네요. 나도 모르게 회상 모드가 되어, 그때 그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시작해 과거 기억들을 더듬다가 화들짝 놀랐어요. 그럼 나는... 계란 프라이 자판기를 찾다가 결국 진짜 나를 찾게 만드는 이야기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