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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슬러 ㅣ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평점 :
《허슬러》는 미국 소설가 월터 테비스의 데뷔작이라고 해요.
처음 보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라는 걸 알고 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1957년 출간된 이 소설은 폴 뉴먼 주연의 영화 <The Hustler> (1961)로 개봉되었더라고요. 이 영화는 보질 못했지만 워낙 『퀸스 갬빗』을 재미있게 봤던 터라 당구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책 제목인 허슬러는 사전적 의미로 사기꾼을 뜻하는데, '사기꾼'이란 표현 대신에 '허슬러'로 바꾸길 잘한 것 같아요. 허슬러라는 단어가 스타트업계에서는 주로 영업 및 마케팅 활동을 통해 스타트업 성장을 주도하는 데 능숙한 사람을 일컫는 용어로 쓰이고, 힙합계에서는 돈 잘 버는 사람, 다작하는 사람의 의미로 사용되고, 노력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무언가를 표현하는 긍정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더라고요. 사실 이 소설만 읽었더라면 주인공 에디에 대한 평가는 사기꾼으로 종지부를 찍었겠지만 연달아 《컬러 오브 머니》를 읽고나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주인공 에디는 내기 당구를 할 때 자기 실력을 속여서 돈을 따는 당구 사기꾼이에요. 찰리와 함께 당구 도박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미네소타 뚱보와 큰 판을 벌였다고 가진 돈을 모두 날리게 되고, 찰리와 헤어져 도시를 방황하다가 새라를 만나게 되는데...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실망했어요. 당당하게 돈을 원한다는 나쁜 놈한테 뭘 바라겠어요. 뒤늦은 후회도 가증스럽고, 그가 원하는 승리도 도박꾼의 심리로 느껴져서 싫었어요. 읽는 내내 욕을 한바가지 쏟아내며 감정이 격해져 있어서 다시는 꼴도 보기 싫었는데, 월터 테비스 시리즈로 《컬러 오브 머니》가 있어서 꼬였던 마음을 조금은 풀어낼 수 있었네요. 어찌보면 소설 속 주인공을 이토록 미워하게 만든 작가의 탁월한 능력을 칭찬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는 그의 모습 속에서 싫어하는 자신을 발견해서 그런 거라는 말이 있잖아요. 포켓 당구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서 포켓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이야기일 텐데, 혹시나 주인공 에디 때문에 열받는 독자들이라면 꼭 《컬러 오브 머니》를 읽어보라고 강조하고 싶네요. 철없는 에디가 그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거든요. 역시 영화로 제작될 만한 소설이구나 싶어서 감탄했어요. 참으로 인간의 욕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네요.
"날 보고 있는 당신의 눈은," 상처받고 화가 난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서,
그러나 목소리에는 평정을 유지하고서 말했다.
"당구 게임에서 당신한테 진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잖아.
방금 돈을 땄으니까 이제 자존심까지 원하는 건가?"
"내가 원하는 건 돈뿐이야."
"그렇겠지." 그녀가 말했다. "아무렴 돈뿐이지.
그리고 인간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우아한 즐거움도."
그녀는 이제 그를 더욱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당신은 고대 로마인과 다를 바 없어, 에디."
"전부 다 가져야 하지." 그가 액자 속 주황색 광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녀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부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어." (20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