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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이에요.
엘리스 피터스가 왜 세계적인 추리소설 작가인지,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거듭 확인하고 있어요. 낯설었던 영국 중세,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이 어느새 친근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어요. 매번 첫 장에 나오는 중세 슈롭셔와 웨일스 국경지대 지도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소설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거니는 상상을 했어요. 슈롭셔 주 슈루즈베르 성 마을에서 잉글랜드 다리를 지나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들어가면 정원을 가꾸고 있는 캐드펠 수사가 있을 것만 같아서 슬며시 미소 짓게 되네요. 땅딸한 늙은 수사 캐드펠은 십자군 전쟁이라는 치열한 과거를 뒤로 한 채 조용히 수도원 생활을 하던 중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모셔오는 임무를 시작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내며 본격적인 탐정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요. 어찌보면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이기에 전혀 유쾌할 수 없는 분위기인데 점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캐드펠 수사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여유로움과 통찰, 인간미 그리고 숨겨진 로맨스가 더해져서 따스한 인간 수업을 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폭력적이고 독단적인 사람들 틈에서 늘 한걸음 떨어져 균형 잡힌 시선으로 판단하는 캐드펠 수사는 똑같은 마음으로 나병 환자들을 돌보고 있어요. 연민과 존중의 마음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면서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도 지독한 상처 안에 따뜻한 마음과 강력한 의지가 살아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제1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해 질병보다 잔혹한 죽음과 기독교도보다 친절한 이교도를 목격했던 캐드펠이기에 나병 환자들의 상처보다 마음의 병과 영혼의 타락이 더 끔찍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예요. 인간에게 추악한 욕망만 있었다면 세상은 온통 지옥이 되었을 텐데, 그 지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한 것은 사랑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고드프리드 피카르 경과 아름답고 어린 고아 상속녀 이베타의 혼례가 신랑의 죽음으로 난장판이 되면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