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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한 도발적인 답변
자비네 호젠펠더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4년 7월
평점 :
《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는 이론물리학자이자 수학자, 과학 작가, 커뮤니케이터인 자비네 호젠펠더의 책이에요. 저자는 2006년부터 과학블로그 Backreaction (역반응)에 물리학계의 잘못된 관행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 연구실에 가지 못하는 동안 유튜브 활동에 몰입하여 현재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13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네요.
이 책은 현대 물리학이 제기하는 거대한 물음에 관한 답변이 담겨 있어요. 여기에 수록된 내용에는 모두 "현재 우리가 아는 한에서는"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어요.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과학적 설명과 비과학적 설명을 구분할 수 있는 힘이에요.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간극, 특히 과학 분야는 그 간극이 매우 큰 영역이라서 대중들은 엉터리 유사과학과 가짜이론에 현혹되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어요. 물리학 박사 학위가 없는 사람이라면 헛소리와 과학이론을 정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저자는 과학과 종교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영적인 개념 중 어떤 것은 현대 물리학과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고, 심지어 어떤 아이디어는 현대 물리학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해요. 지난 한 세기 동안 물리학자들은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 과정에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은 과학의 한계는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가 세상을 더 많이 배우고 알아갈수록 이 한계는 계속 뒤로 물러나고 있다는 거죠.
이 책에는 모두 열 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 나와 있는데, 더 깊이 있는 답변을 얻고자 몇몇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수록했어요. 우선 질문들을 소개하자면, "과거는 정말 어딘가에 존재하는가", "물리학은 우주의 시작과 끝을 밝혀낼 수 있는가", "물리학적으로 젊음을 되돌릴 수는 없는가", "우리는 그저 원자가 든 자루일 뿐인가", "정말 다른 세계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가", "물리학은 자유의지를 부정하는가", "우주는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 "우주는 생각하는가", "인간은 예측 가능한 존재인가", 마지막으로 "그래서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예요.
현재 알려진 자연의 기본 법칙들은 시간 가역적이면서 결정론적인데 양자역학의 발견으로 예외가 생긴 거예요. 시간 가역성의 두 가지 예외 과정이 바로 양자역학의 측정과 블랙홀의 증발이에요. 양자역학에서는 파동함수라고 하는 수학적 객체에 대한 시간 가역성 진화 법칙(슈뢰딩거방정식)이 있고, 파동함수로부터 측정 결과의 확률을 계산할 수 있으나 파동함수 자체는 관측할 수 없어요. 우리가 양자역학에 관해 하나 알아야 할 점은 양자역학의 물리학적 해석에 논란의 여지가 상당히 많았다는 거예요. 양자역학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결과의 불확실성은 모두 초기 조건에 관한 지식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인데 양자역학으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무작위성이 된 거예요. "정말 다른 세계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온 것은 다중우주 아이디어에서 온 것인데, 저자는 관측할 수 없은 어떤 것이 실재라는 가정은 우리가 관측하는 것을 서술하는 데 불필요하므로 이런 우주들이 실재라고 가정하는 것이 '무과학'이라고 표현했어요. 우리의 복제본이 다중우주 안에 존재한다는 아이디어, 우리 우주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는 가설은 진지한 과학적 논거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 가설은 사람들이 믿기 때문에 믿는 것이지 이를 뒷받침할 논리가 있어서 믿는 게 아니므로 과학적이지 않다는 거예요. 일반 대중들은 시뮬레이션 가설을 재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저자 입장에서는 과학과 신앙을 뒤섞어 놓았다는 점에서 나쁜 생각이며 해롭다고 본 거예요. 과학만으로 모든 질문에 답을 얻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과학 이론 덕분에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어요. 물론 우주의 시초에 관한 수많은 이론 중 어느 것이 맞는지 우리는 영영 모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과학을 통해 우리 자신과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위치 그리고 우주를 이해하며, 계속 나아가야 할 여정이라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가 정말로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을 풀어주고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