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끌기
제임스 모로 지음, 김보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하느님이 돌아가셨대. 이건 무슨 해괴망칙한 소리야?

제임스 모로의 장편소설은 이제껏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오던 절대자 신의 존재를 인간화한 독특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인간처럼 죽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신의 존재에 대해 확실하게 답변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다. 본 적도 없는 존재에 대해 증명할 방법은 없으니까.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을 구분지을 수 없는 인류의 역사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대부분의 사람이 신의 존재를 인정하며 살고 있고, 비록 무신론자일지라도 극한 상황에서는 절대자를 찾게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생로병사의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무한한 존재를 갈망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저 바다 위에 하느님의 주검을 확인한 인간들은 하느님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단연 풍자 소설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의 죽음은 인간에게 필요한 도덕, 윤리를 위협할만한 중대한 사건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감시를 벗어난 인간들의 다음 행동은 무질서와 혼돈이다. 법체계가 파괴된 도시에 폭도들이 난리를 치듯이 인간의 이성과 선의는 마비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죽음이 이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지 기발하고 재미난 소설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커다란 반전이다. 이 소설은 매우 철학적이며 풍자적인 무거움이 느껴진다. 같은 주제를 말하지만 다소 느낌이 다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 오버랩되었다. 그들의 상상력은 우리를 거대한 우주 안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우리 인류를 과학과 종교의 잣대가 아닌 그 이상의 것으로 설명해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주의 신비만큼 무한한 상상력이다.

 절대자인 신, 하느님의 존재는 우주 안의 질서를 의미한다. 우리는 그 영향권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 질서 있고 평화로워 보이지 않는다. 마치 하느님의 주검을 확인한 초대형 유조선 발파라이소호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신의 감시를 받고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지대로 살고 있다. 신은 우리에게 삶을 주었을 뿐, 그 삶의 주인은 우리 자신인 것이다. 인류, 인간의 삶이 발파라이소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 안에서 세상의 깊이를 담아내고 있다. 무신론자의 오만함도 유신론자들의 광적인 믿음도 인류를 구원할 수는 없다. 신은 죽었다고 여겨질 만큼 혼란과 절망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해답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느님이 돌아가신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도대체 왜 하느님이 돌아가셨는지 궁금한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딱딱한 철학서가 아닌 제임스 모로의 장편소설이 어느새 나에게 철학적인 해답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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