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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스페이스 바닐라
이산화 지음 / 고블 / 2024년 6월
평점 :
《미싱 스페이스 바닐라》는 이산화 작가님의 소설집이에요.
이 책에는 모두 열 개의 단편이 실려 있어요. 첫 번째 이야기는 책 제목과 동일한 <미싱 스페이스 바닐라>인데, 정말 우주선 안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사라진 것이 주된 사건이에요. '설마 바닐라 아이스크림 때문이라고?', 대부분 어이없는 반응을 보일 텐데, 주인공 역시 처음엔 그랬어요. 종군기자로서 전쟁영웅을 취재하는 자신이 왜 회의에 섭외된 건지, 명확한 의도를 몰랐기 때문이에요. 곧 그 이유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미래 우주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속에 이토록 익숙한 장면이 등장할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이슈와 장면이 자동적으로 연상되어 피식 웃음이 났어요. 그동안 우주와 과학을 소재로 한 SF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는 사뭇 달랐어요. 역시나 두 번째 이야기인 <아마존 몰리>부터는 슬슬 어떤 분위기인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어요. 척추동물 가운데 처음으로 무성생식으로 번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물고기인 아마존 몰리, 진화생물학자들은 무성생식은 원본을 계속 복사하기 때문에 중간에 생긴 오류가 점점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신기하게도 아마존 몰리의 게놈에선 나쁜 돌연변이가 축적돼 퇴화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해요. 절묘한 유전형질을 갖춘 매우 드문 케이스인 아마존 몰리를 인공적으로 만들려고 시도한 과학자의 이야기인데 그건 겉포장이고, 내밀한 속을 들여다보면 사랑에 빠졌던 남자의 최후를 확인할 수 있어요.
<매듭짓기>와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에서>는 환상과 기이한 미래의 조합의 끝을, <재시작 버튼>과 <과학상자 사건의 진상>에서는 우주선과 기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를 다루고 있어요. 어쩐지 작품들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이성과 객관이 지배하는 과학의 세계가 허상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상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지 않나?" (69p) 여기서 말하는 이상한 사람은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멀쩡하게 자기 분야에서 큰소리치는 전문가, 과학자를 가리키고 있어요. "당신을 공격한 게 아니에요. 당신 모델의 결함을 지적한 거지. 지적을 좀 어른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어떻습니까?" (342p) 서로 공격할 때 이성을 살짝 내려놓는 과학자의 모습이 그들이 연구하는 유인원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어요. 실제 연구 현장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소설 속 세계를 통해 다양한 상황들을 상상해볼 수 있었네요. 바닐라 아이스크림, 뜬금없이 스페이스 하면 한동안 바닐라를 떠올리게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