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번의 세계가 끝날 무렵
캐트리오나 실비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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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삶, 이 세상은 ··· 선물이야.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야 맞는 것 같아." (384p)


"영화 <이터널 선샤인>과 <트루먼 쇼>를 섞어놓은 듯한 독특한 스토리"라는 소개글이 이 소설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어요. 두 영화를 좋아한다면 분명 이 소설도 재미있게 빠져들 거예요. 무수히 많은 생을 거듭하며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 두 사람의 운명적인 이야기가 완전 제 취향이었네요. 놀랍게도 이 소설은 스코틀랜드 태생의 언어학자 캐트리오나 실비의 첫 번째 소설이라고 해요.

《백만 번의 세계가 끝날 무렵》은 쾰른의 어느 대학에 입학한 외국인 학생 소라와 산티의 첫 만남으로 시작하고 있어요. 소라는 시끄러운 파티를 피해 홀로 산책 중이었고, 풀밭에 드러누워 있는 남자가 혹시나 술에 취했거나 기절했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을 걸었던 거예요. 커다란 눈과 검은 고수머리의 남자는 산티아고 로페즈, 산티였어요. 멀쩡하게 일어나는 모습을 본 소라는 더 이상 대화를 원치 않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다시 풀밭으로 돌아가서, "안녕. 난 소라 리슈코바라고 해요. 처음 보는 얼굴이네. 만나서 반가워요." (16p)라며 말을 건넨 거예요. 그는 술 먹고 뻗어있던 게 아니라 별을 보고 있었다고 말했는데 그 순간 소라의 심장이 쿵쿵 뛰었어요. 아름다운 첫 만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 역시 머리가 아닌 심장이 반응을 한 거죠.

"누군가를 진심으로 잘 아는 게 가능할까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보다는 잘 알겠죠."

"그럴까요? 우린 서로에게 영원히 불가사의로 남겠네요." (17p)

우와, 우연히 나눈 대화일 뿐인데 앞으로 펼쳐질 두 사람의 기막힌 운명을 알리는 신호탄 같아서 너무 멋졌어요. 이번 생이 끝나도 다시 다음 생에서 만나는 산티와 소라는 매번 다른 조건의 사람으로 등장하지만 어느 생이든 늘 독일의 쾰른이라는 도시에서 마주치게 되고, 조금씩 서로의 존재와 전생을 자각하게 되면서 숨겨진 비밀을 찾으려고 해요. 과연 이들의 운명에는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을까요. 흥미진진한 이야기 덕분에 읽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백만 번의 세계가 끝날 무렵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진실은... 중요한 건 그 끝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거예요.


"넌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어. 우린 탐험가야. 언제나, 영원히." (4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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