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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워터 레인 ㅣ 아르테 오리지널 30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평점 :
폭우가 쏟아지는 밤, 천둥 번개가 무섭게 내리치는데 집으로 가기 위해 혼자 운전을 하고 있어요.
첫 번째 선택,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칠흑 같은 숲길 vs 교통체증까지 더해져 시간이 더 걸리지만 환한 고속도로, 어디로 갈까요. 겁이 많은 당신이라면 무서움과 지루함,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되겠네요.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어서 숲길을 선택했는데, 두 번째 선택이 기다리고 있네요. 여전히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앞쪽 길가에 자동차 한 대가 멈춰 서 있어요. 고장이 난 것인지 전조등은 그대로 켜져 있고, 운전자로 보이는 여자 모습이 얼핏 보였어요. 당신이라면, 내려서 무슨 일인지 확인한다 vs 그냥 내 갈 길을 간다, 어느 쪽인가요.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느냐 마느냐의 선택인 거죠. 아무일도 없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든 중요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일은 벌어졌고, 순간의 선택이 많은 것들을 바꿔버렸네요. 어쩌면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근데 소설이라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는 이야기를 만났네요.
《블랙워터 레인》은 B.A. 패리스 작가님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에요.
이 소설은 7월 17일 금요일부터 10월 2일 금요일까지의 이야기예요. 겨우 몇 달, 인생에서 짧을 수도 있는 이 시간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길고 괴로운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네요. 한여름 밤에 비가 쏟아지던 그때 그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마지막 장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앞서 설명한 내용은 첫 장면으로 주인공 캐시가 겪은 일이에요. 캐시는 남편 매튜가 기다리는 집으로 빨리 가고 싶어서 숲길에 멈춰 서 있는 자동차를 그냥 지나쳤어요. 잠시 망설였지만 지나치면서 봤던 여자는 다급하게 손을 흔들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표시를 전혀 하지 않아서 괜찮을 거라고 여겼던 거예요. 근데 다음 날, 블랙워터 길 차 안에서 여성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봤고, 캐시는 몹시 죄책감을 느꼈어요. 정서적으로 불안해서였을까요, 캐시는 자꾸 자신이 했던 말이나 상황을 잊는 일이 잦아졌지만 숨기려고 해요. 사실 캐시는 이른 나이에 치매를 앓게 된 엄마를 돌보느라 이십대를 보냈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서른세 살에 겨우 자신의 삶을 살게 되었어요. 중학교 역사 교사 자리를 얻었고, 그즈음 매튜를 만나 결혼해서 지금은 거의 신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혹시나 기억을 잃는 게 엄마처럼 조기치매 증상일까봐 혼자 전전긍긍하는 거예요. 이상하고 섬뜩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캐시는 자기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블랙워터 길 차 안에서 죽은 여성은 캐시가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인데, 만약 그녀를 죽인 범인이 캐시를 노리는 거라면... 놀랍게도 이 소설은 주인공 캐시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통해 쫄깃한 긴장감과 공포를 전해주고 있어요. 원래 이 소설은 《브레이크 다운》이란 제목으로 2018년 출간되었는데, 영화 <블랙워터 레인> 2024년 6월 개봉 예정이라 리커버로 새롭게 나온 거예요. 원제인 "The Breakdown"은 '고장'이라는 뜻으로 자동차나 기계의 고장뿐 아니라 사람의 정신적 문제도 가리키며 흔히 정신적 붕괴를 가리키는 신경쇠약(nervous breakdown)이라는 말에 쓰인다고 하네요. 첫 장면에 고장난 듯 서 있던 자동차와 건망증을 겪는 캐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단어인데,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가장 심각한 브레이크 다운의 실체를 확인하게 될 거예요.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놀라운 심리 스릴러 소설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