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말들 -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조소연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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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어머니의 세계로부터 추방되었다." (7p) 라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추방'이라는 단어가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에덴 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를 떠올리게 됐어요. 성경에 적힌 대로라면 우리는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의 후손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결코 낙원이 될 수 없어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머니의 몸에서 밀려나와 원하지 않았던 삶을 살고 있어요. 이전의 삶이 존재했다면 분명 현재의 삶을 원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모두가 불행한 건 아니지만 모두가 행복한 것도 아니니까, 불행의 크기를 비교할 순 없지만 때로는 지독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마주할 때가 있어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는,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 일인 것 같아요.

《태어나는 말들》은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요. 이 책은 제1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조소연님의 원작 <태어나는 말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제목으로 짐작했지만 본문의 첫 문장은 전혀 예상도 못한 '고통'이었어요.

"2018년 5월 7일, 어머니가 자살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약 한 달간 심각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14p)

저자는 이 책이 어머니의 자살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과 그 상실의 폐허 위에 그녀의 삶을 재건하고자 하는 이야기라고 말했어요.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가까운 가족이 직접 목격한다는 건 너무도 지독한 형벌인 것 같아요. 이러한 불행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아닐까 싶어요. 상처는 드러내고 약을 발라줘야 낫는 법인데, 보이지 않게 덮어버리면 곪을 수밖에 없어요. 몸에 난 상처도 그러한데 마음에 난 상처는 오죽할까요. 가족의 죽음만으로도 견디기 힘든데, 자살이라는 죽음은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긴 것 같아요. 그때 그 순간, 뭔가 했더라면 혹은 뭔가 하지 않았더라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던 작가에게 이 책은 '다시 태어나는' 자신을 위한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남모를 고통과 슬픔을 품은 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고, 써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글을 쓰는 일이 치유와 생존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요. "나는 추방되었고, 내가 있던 곳에서 아주 멀리 떠나왔다. 그리고 새로운 정착지를 발견했다. 어머니가 나를 그녀의 세계에서 추방하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새로운 땅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286p) 2023년부터 제주에서 글쓰기 공동체 '자기 해방의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이 세상의 어딘가에 있을 '당신'을 발견하기 위해, 당신을 닮은 또 다른 '당신들'을 발견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을 멈춘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302p)라고 이야기하네요. 어쩌면 이 책은 어딘가에서 태어나게 될 수많은 말들을 위한 마중물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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