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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무>는 <파피용>을 읽은 후 다시 찾게 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다. 짧은 단편 모음인데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야기를 빠르게 지어내는 능력을 유지하고 싶어서 쓴 것들이라고 한다. 그의 기발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한 번 그의 책을 읽은 뒤로는 그의 책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가 어릴 적, 아버지는 잠자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 주셨고 그는 밤에 그 이야기에 관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런 영향 탓인지 그의 이야기는 꿈 같은 환상적인 요소가 많다. 현실적인 세상 이야기가 아닌 우주 그 이상의 신비를 담고 있다. 그래서 마치 거대한 우주 안에 우리 인간은 작은 개미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단편 중에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는 단연 돋보인다. 미래공상영화와 같은 줄거리다. 지구 상에 가장 영리한 존재라고 자부하는 우리 인간이 한낱 애완 인간으로 전락한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키우는 애완 동물과 우리의 입장이 바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애정으로 키운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동물들도 나름의 자연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 사람이 무슨 권리로 동물들의 자유를 뺏고 자기들의 소유물로 여기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특히나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애완 동물들은 무관심으로 고통받거나 죽을 수도 있다. 물론 부모들이 함께 돌봐주겠지만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아이들에게 애완 동물은 무리다. <어린 신들의 학교>를 보면 이와 연관된 생각을 하게 된다. 단편은 하나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듯 서로 연관이 있다. 나무 한 그루, 작은 개미 한 마리에서도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박식함이 놀랍고 부럽다.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선함이 있어 좋다.
어린 시절에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한 적이 있다. 나름대로 이야기를 만들고 글로 쓰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작가가 될 만큼의 소질과 끈기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요즘 우리집만의 소설가가 되었다. 아니 엉터리 이야기꾼이 되었다. 그 사연인즉슨 우리 아이가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었더니 습관이 되어 밤마다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어느날인가 졸립기도 하고 은근히 귀찮은 마음에, 누워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는 동화를 들려주다가 지겨워서 이야기를 만들었더니 아이가 재미있게 들었다. 그 뒤로는 엄마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아니었다. 상상력의 한계에 부딪혀 이야기가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 궁색하게도 “머리가 아파서 이야기가 생각 안나네.”하며 변명을 하게 됐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재주가 없는 나는 읽었던 책들을 떠올리며 짜깁기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다. 문득 이 책을 읽다 보니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비록 나는 엉성한 이야기를 들려 주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 아이는 꿈 속에서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을까라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은 어른들을 꿈꾸게 하는 이야기다. 아이가 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 듯이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 역시 꿈을 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