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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와 빈센트 (하드커버 에디션)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스페셜 ㅣ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지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저녁달 / 2024년 5월
평점 :
꽃 피는 아몬드 나무, 제가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에요.
이른 봄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아몬드 꽃은 새 생명과 희망, 부활의 상징이 되었고, 이런 상징 때문인지 고흐는 갓 태어난 조카를 위해 아몬드 나무 꽃을 그려 선물했는데 그의 37년 인생 마지막 봄에 그린 마지막 꽃그림이라고 해요. 유난히 밝고 화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이라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동주와 빈센트》는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스페셜, 하드커버 에디션이에요.
우리가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과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시화집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어요. 나를 위한 선물은 물론이고 소중한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네요. 아름다운 이 책 속에는 윤동주 시인의 124편의 시와 빈센트 반 고흐의 129점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어요. 유명한 시와 그림의 조합이라서 이미 다들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고, 안다고 여길 수 있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어요. 시를 위해서 그려진 그림이 아닌데 원래 함께였던 것처럼 시를 읽으며 고흐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 속 이야기 같기도 하고, 시가 그림이 된 것 같기도 해요.
<길>이라는 시, "잃어버렸습니다. /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 길게 나아갑니다. //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42p) 와 어우러진 Pollard Willows (1889)를 보면 눈앞에 놓인 이 길을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살다보면 문득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살다보면 살아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아요. 이러한 감성을 느끼게 만드는 또 한 편의 시가 있어요. <바람의 불어>라는 시, "바람이 어디로 불어와 /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 바람이 부는데 /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 바람이 자꾸 부는데 /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34p)에는 1888년 고흐의 자화상이 있네요. 바람이 불고 강물이 흘러가듯이 괴로운 오늘도 지나가겠지요. 괴로움이 마음을 다 갉아버리지 않도록 흘려보내길, 바람 따라, 강물 따라... 보낸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다시 새롭게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는 있어요. 그래서 《동주와 빈센트》는 작은 기쁨이자 위로가 되어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