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버려둬
전민식 지음 / 파람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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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냥 내버려 둬》는 전민식 작가님이 그려낸 디스토피아 픽션이에요. 거대한 기계 궤도 안에서 각자 정해진 페달을 밟아야 하는 페달러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어요. 주인공 탁수는 도시의 핵심부인 1212궤도를 움직이는 임무를 맡은 페달러예요. 궤도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마스터 자리에 오르지만 영 달갑지 않아요. 누구나 부러워할 마스터가 된 것인데 무엇 때문에 꺼려지고 싫은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해요. 언젠가부터 궤도가 멈추면 망상에 빠지곤 하는데 그때문에 미묘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더군다나 동료 페달러인 히로가 실종되면서 지속적인 기억의 훼손이 있었음을 자각하게 돼요. 작은 균열이 서서히 커져가듯, 주인공 탁수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바퀴를 밟아 궤도를 움직이는 기계적인 일상이 주는 평온함이 점점 불편해지면서 불쑥불쑥 떠오르는 단편적인 기억들을 좇게 돼요. 도대체 왜 탁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요. 과연 그 기억들은 탁수를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요.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그가 겪는 심경의 변화들이 어쩐지 낯설지 않아서,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페달을 밟는다는 행위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떠올리게 만드니까, 시공간에 갇힌 노예와 같은 느낌을 줬던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도시 최고의 페달러인 탁수의 일탈이 갖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이 소설은 주인공을 정해진 목적지로 순순히 데려가지 않고 낯선 곳에 내버려둔 채, 방황하게 만드네요. 결국 우리는 묻게 되겠죠, 주인공처럼. "어디로 가죠?"(218p)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길, 그 길을 무작정 걷던 주인공은 드디어 자신이 무엇을 위해 걷는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묻게 된 거예요. 반면 장대는 "이 도시에서 정상은 페달러로 살고 페달러를 위해 살고 페달러에 의해 살아가는 거야." (196p)라고 말하며 탁수에게 제발 정상으로 되돌아가자고 해요. 궤도와 페달을 정상적인 삶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새로운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그들이 모르는 지옥일런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우리 자신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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