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슛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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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대단한 사기꾼과

대단한 바보."

- 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88p)


"한 마디로 인간 세상 모든 일들은

전적으로 어리석음의 독무대라 하겠습니다."

-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14p)


《레디 슛 Ready-Shoot!》은 고호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이 소설의 주인공 변혜수는 정말 지지리 운도 없는 사람이에요. 수십 차례 연극 무대에 섰어도 제대로 된 보수를 받지 못하자 극단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금고에 손을 대어 공금 횡령, 그 다음엔 심부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떼인 돈 받으러 찾아간 유흥주점에서 시비가 붙어 양주병을 휘둘러서 특수상해로 감옥에 가게 됐어요. 바깥 세상이나 감옥 안이나 사람 사는 곳이라 별별 인연으로 엮이게 되는 것 같아요. 혜수는 같은 방을 쓰는 왕언니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게 됐고, 먼저 출소한 왕언니의 죽음을 접하면서 전직 배우답게 치매 노인의 수천억 유산을 빼돌리기 위한 사기극을 펼치는 이야기예요. 왕언니는 단지 오억이라는 돈 때문에 다섯 살 여자아이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죄로 감옥에 온 인물인데 감옥 안에서도 전혀 죄책감 없는 모습이 더 최악이네요. 끔찍한 살인 사건들 중 대부분은 돈 때문인 경우가 많고, 그러한 범죄를 접할 때마다 사람의 탈을 쓴 악마들 같아서 무섭고, 그들이 원래부터 나쁜 인간은 아니었을 거라는 실날 같은 희망 때문에 슬퍼지네요. 돈이 뭐라고, 사람 목숨보다 중할까요. 돈에 미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사실 이번 소설도 같은 맥락의 사기극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나쁜 짓을 저지르는데 무슨 정당한 명분을 찾을까마는, 근데 단순히 돈 때문이라고 하기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어서 반전의 반전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버림받은 여자의 일생』 이라는 소설 내용과 혜수의 사기극이 절묘하게 교차하면서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였네요.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그들의 연극과 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준 것 같아요. 본인 역량이 부족한 탓에 NG를 내는 건 볼품없지만 소신껏 스스로 NG를 내는 건 꽤 멋진 일인 것 같아요. 가장 훌륭한 NG는 모든 연극이 끝난 뒤에서야 확인할 수 있어요. 암튼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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